[강소기업이 미래다]정연규 그립 대표
3일 한국일보와 만난 정연규 그립 대표. 류효진 기자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는 다품종이면서 소량인 게 특징이어서 대기업이 하기에 적합한 영역이 아닙니다. 반면 기술을 상용화하지 못하고 실험실에만 머무는 스타트업도 많죠. ‘그립’은 8년간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이미 100만 가구 이상에 품질을 증명했습니다.”

20여년 동안 정보기술(IT) 업계에 몸담았던 정연규(49) 그립 대표가 첫 창업을 결심한 건 2010년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조차 정립되기 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에 관심도 없을 때였지만, 정 대표는 미래를 내다봤다. 그는 “빅데이터나 AI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데이터 수집”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각 개별 사물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통신하는 IoT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립은 정 대표가 여러 회사를 거치며 경험했던 소프트웨어나 네트워크, 디바이스 기술 등을 기반으로 창업한 IoT 전문 기업이다. 휴대폰으로 가정의 전등, 가스ㆍ전기 제품 등을 켜고 끌 수 있는 홈 IoT용 허브(hub)와 센서를 무기로, 스마트홈과 스마트빌딩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엔 LG유플러스와 함께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IoT 서비스를 내놓았고, 불과 2년여 만에 100만 가구에 홈 IoT 서비스를 보급하는 실적을 거뒀다. 국내 IoT 서비스 가입자의 70%에 달하는 수치다. 정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립 정연규 대표. 류효진 기자

창업 초기 무수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힘이 되는 건 고객들의 다양한 반응이었다.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간 부모들은 혹시 가스 밸브를 열어놓고 나오진 않았는지, 문을 잠근 게 확실한지 매번 조바심내지 않게 됐고, 혼자 사는 싱글족들은 한겨울 얼음장 같은 바닥에 발을 딛는 대신 미리 집안 온도를 높여둘 수 있게 됐다. 정 대표는 “IoT의 세 가지 장점인 편리성, 경제성, 보안성을 사람들이 점점 체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이 안정되면서 직원 수 10명으로 시작한 그립은 매년 꾸준히 성장해 현재 직원 50여명을 거느린 ‘9년차’ 강소기업이 됐다.

그립은 ‘지웨이브(Z-wave)’ 제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800~900M㎐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통신하는 지웨이브는 블루투스나 와이파이와 비슷한 근거리 통신 기술이지만, 전파 간섭이나 혼선이 거의 없고 배터리 소모가 매우 적어 상대적으로 홈 IoT 기기에 적합하다. 덴마크의 젠시스가 개발한 이 기술을 국내에 들여와 처음 상용화한 게 그립이다. 2014년 LG유플러스와 함께 선보인 ‘스마트 가스락(Gas Lock)’은 지웨이브 기술이 적용된 국내 첫 IoT 기기다.

지웨이브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폐쇄적인 시스템을 가진 기존 IoT 허브와 달리 서로 다른 연결 방식을 가진 기기들까지 한꺼번에 제어할 수 있는 호환성은 그립만의 장점이다. 정 대표는 “그립의 IoT 허브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방식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며 “해외제품이든 국내제품이든, 프로토콜(통신 규약)만 맞추면 모두 연결해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규 그립 대표. 류효진 기자

지난해 그립은 세계 최초로,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독립형 IoT 허브를 개발했다. 그 동안 나온 IoT 허브들이 특정 통신사 서버에만 정보를 저장해오던 것과 대비된다. 정 대표는 “아무래도 홈 IoT는 개인 정보나 보안 문제 등이 얽히면서 사람들이 심리적인 장벽을 갖게 마련”이라며 “독립형 IoT는 개인정보를 통신사에 제공하지 않더라도 집 안에서만큼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Io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형 IoT 허브는 ‘나만의 서버’를 집 안에 둘 수 있는 기술로, 특허 기술력을 인정 받아 지난해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대한민국 강소기업대상’에서 혁신상품 IoT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그립은 올해에는 해외 진출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미 확정된 프로젝트만 수십억원 규모에 달한다. 정 대표는 “중국 남방지역의 경우 부호들이 별장으로 가진 집이 많기 때문에 빈 집이 많아 스마트홈 솔루션이 인기”라며 “최근 스마트시티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동유럽에서도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한양대, 서울 어린이대공원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IoT 시스템 구축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IoT 시장의 성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는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사물의 개수는 매년 20% 이상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0년 전세계 IoT 기기 수가 200억개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정 대표는 “IoT는 클라우드, 데이터, 모바일, AI 등 다양한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며 “그립도 집 안뿐 아니라 빌딩, 캠퍼스, 호텔, 학교, 병원 등 다양한 형태로 영역을 넓혀나가며 세상을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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