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하늘을 난다. 핵전쟁으로 세계는 한차례 절멸 위기를 겪었고, 인류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우주 식민지를 개척한다. 인간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노동을 대신할 새 인류를 ‘발명’한다. ‘넥서스6’이라 명명된 복제 인간이다. 아직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묘사들이다. 하지만 1982년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2019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 사람들은 37년 뒤 세상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1968년 쓰였고, 199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1990년쯤 되면 복제 인간이 위험천만한 일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와 SF소설이 앞날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SF는 종종 미래나 가상세계를 빗대 현실을 은유하고 비판하려 하는 게 원래 목적일 테니까.
□ ‘블레이드 러너’도 제작 당대의 세상을 여러모로 반영한다. 원작 소설이 쓰였을 때도 그렇지만 1980년대 인류는 냉전으로 인한 핵전쟁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다. 60년대 만큼은 아니어도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은 치열했다. 영화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이 코카콜라를 광고하는 대형 화면이 등장하는 등 곳곳에 일본 이미지가 배치돼 있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미국 사회에 경제ㆍ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미국인의 우려를 엿볼 수 있다.
□ 미래보다 당대 세계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다고 하나 ‘블레이드 러너’는 지금 이곳의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복제 인간은 인간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지능까지 뛰어나 주로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노동력이나 전쟁 자원으로 소비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임에도 복제 인간은 태생적으로 ‘공산품’이기에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은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맞은 2019년은 어떨까. 똑 같은 일을 더 많이 하고도 돈을 덜 받거나, 법의 보호 없이 위험한 작업 환경에 내던져지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는 아직 너무나 많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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