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가해자, 자신의 행위 의미 인지” 지적
조울증을 앓고 있는 30대 정신질환자가 진료 상담 도중 흉기를 휘둘러 의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해자의 형사처벌 수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가해자가 범행 당시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면 같은 살인이라 해도 형량이 대폭 줄거나 아예 처벌을 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과 △행위통제능력이다. 가해자가 평소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과는 별개로 범행 당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판단하지 않는 추세다.
법원이 정신질환자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감안해 심신장애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는 2016년 12월 지능이 5세인 20대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 A씨가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친어머니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은 “A씨가 수사기관에 ‘내가 허벅지랑 등을 칼로 찔러서 엄마 하늘나라에 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보면 미약하게나마 죽음을 이해할 능력과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A씨 측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비록 지능이 낮긴 하지만, 자신이 칼을 휘둘러 어머니를 찔렀을 때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알고도 행위를 했기 때문에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범행 당시 심신에 장애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이를 심신미약과 심신상실 등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한다. 심신미약은 의사결정능력이나 판단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이 가벼워진다. 나아가 이런 능력마저 없는 심신상실로 인정될 경우, 행위에 대한 책임능력도 없다고 판단돼 처벌 자체를 면해준다.
법원이 심신상실을 인정한 건 ‘상윤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10대였던 발달장애 1급 이모 군이 두 살배기 아기를 비상계단 난간에서 떨어뜨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재판부는 “이군이 자신이 한 일은 물론 재판을 왜 받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한 자폐증세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키우던 애완견의 악귀가 씌었다며 엄마가 친딸을 살해한 사건에도 법원은 “(가해자가)판단능력 등이 결여된 상태에서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며 심신상실 상태였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은 가해자 박모(30)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했고, △범행 직후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을 인정하는 등 자신의 행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평소 앓고 있던 질환으로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지만, 흉기를 미리 준비해 오는 등의 정황을 봤을 때 심신미약으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박씨에게 특별한 살해 동기가 없었고 단순한 정신병적 질환으로 살인에 이르렀다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살인사건은 동기가 가장 중요한데, 이번 사건은 특별한 동기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며 “이 경우 가해자가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살해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어 심신미약이 인정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가 소명되고 구속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날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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