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네시스 대상 수상 영예… 부상인 유럽행 티켓 2위에 양보
아들 얻고 늦은 결혼식까지 치러… 골프 동반자인 아내와 육아 전념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제네시스 대상 수상자 이형준(27ㆍ웰컴저축은행)은 집 밖에선국내 최고 남자골퍼 ‘이 프로’로 통하지만, 집에선 영락없는 ‘2%’짜리 초보 아빠다. 2일 오전 경기 용인시 자택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형준 얼굴엔 피곤이 묻어났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나날이 계속된 탓인 듯했다. 그는 어디든 가족과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해 지난해 말 시상식 등 각종 행사에 돌도 안 지난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 아들이 병원 신세를 져 크게 놀랐다고 한다. 육아를 거들기만 하는데도 진이 빠진다는 그는 “대상만큼 어려운 게 육아”라면서 “육아의 90%는 아내가 맡고 있음에도 10%를 돕는 일도 만만치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순리대로라면 이형준은 지금 제네시스 포인트 1위에게 주어지는 유러피언 투어 1년 진출권을 쥐고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출전권을 2위 박효원(32ㆍ박승철헤어스튜디오)에게 양보하고 국내서 아내 홍수빈씨와 아들 승기군과 알콩달콩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형준은 “유럽 무대 도전 의지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란 판단이 컸다”라면서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가 선수로서의 더 큰 도전 대신 가족과 시간을 택한 이유는 뚜렷했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게 많아 지금 당장은 삶의 무게를 가정에 두고 싶다”는 게 이형준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형준은 인생 최고 시즌이던 지난 시즌까지 가족들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누구보다 만삭 몸으로도 이형준의 경기를 찾아 다니며 응원한 아내 힘이 컸다. 아내는 한때 이형준의 골프 동반자이기도 했다. 재작년 이형준의 캐디를 맡아주던 아버지 건강이 나빠지자, 당시 여자친구던 홍씨가 직접 캐디 가방을 메고 10차례가 넘는 경기를 함께 치렀다. 그 때부터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6월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부턴 상위권에 오르며 자신감도 붙었다고 한다.
이런 아내의 꾸준한 응원 속에 이형준은 지난해 자신이 출전한 17개 대회를 모두 컷 통과했고, 두 차례 준우승을 포함해 톱10에도 5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년 내내 안정적인 경기력을 펼친 그는 제네시스 포인트 4,662점을 얻어 박효원을 138점차로 따돌리고 KPGA 입성 당시부터 가장 이루고 싶었던 대상 꿈을 이뤘다. 비록 유러피언 투어 출전권은 내려놓았지만, 1억원의 보너스 상금과 고급 세단 제네시스, KPGA 5년 출전권도 얻었다. 아들도 얻고, 지난달 늦은 결혼식도 치른 그는 “이보다 더 바쁘고 정신 없는 겨울은 없었지만 이만큼 행복한 겨울도 없었다”라며 요즘 기분을 전했다.
남편, 아빠로의 삶에 적응해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씩 넓어졌다. 아직 20대 후반으로 국내 프로골퍼들 가운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지만, 자신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단 걸 하나 둘씩 깨닫고 있단다. 그간 모교 후배 등 주니어 선수들에게 매년 수백 만원씩 후원해왔던 그는, 지난해 동료들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북 제작을 위해 ‘목소리 기부’에 나서거나, 소아 환우를 위해 1,000만원을 내놓으며 나눔에 동참했다. 3일엔 문도엽(28) 등 친한 동료들과 연탄기부도 나서기로 했다.
2019시즌 준비를 위해 9일 태국 전지훈련을 떠나는 그는 새 시즌 목표를 메이저대회 우승과 상금왕으로 설정했다. 그는 “수준 높은 선수들이 모이는 국내 메이저 대회와 더CJ컵을 통해 ‘내가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라며 “일단 조금은 성공 가능성이 보인 메이저 대회 우승부터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용인=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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