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텍 노동자 두 명(홍기탁 박준호)이 작년에 이어 2019년 새해를 굴뚝에서 맞았다. 이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에 있는 75m 높이 굴뚝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415일. ‘활기차고 행복한, 복이 넘쳐날 새해’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주위에 넘쳐날 때, 이들은 “참담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들이 맞이할 올 한 해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하루를 지낼 때마다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 기록이 새로 쓰여지고 있는 데 굴뚝 아래로 내려올 만큼의 기회나 명분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종교계가 중재에 나서면서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와 세 차례(12월 26ㆍ29ㆍ31일) 머리를 맞대봤지만 성과는 전혀 없다. 파인텍 노동조합은 ‘고용 승계’를 얘기하지만 회사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한다. 회사는 오히려 “고공 농성 하는 사람은 영웅이 되고 제조업을 하는 사람은 악마로 만들고 있다”고 항변한다. 굴뚝 농성 자체가 노동자들 여론몰이에 불과하다는 불쾌가 실린 주장이다.
시계추를 2010년으로 한 번 돌려보자. 스타플렉스는 파산한 섬유가공업체 ‘한국합섬’을 자회사로 인수해 이름을 ‘스타케미칼’로 바꾼다. 인수 조건으로 노동자 100여명의 고용을 승계한다는 약속을 내밀었지만, 회사는 1년7개월 만에 일방적으로 폐업 절차를 밟으면서 정리해고에 나섰다.
파인텍의 고공 농성은 이때 시작됐다. 당시 금속노조 스타케미칼 지회장인 차광호씨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공장 굴뚝에 올라간 것이다. 이 농성도 408일이나 계속됐고, 사측은 그제서야 “고용 및 생계를 보장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마저 지키지 않자, 노동자들은 다시 굴뚝 위를 찾았다. 고용 보장과 승계는 결국 ‘약속을 지켜달라’는 호소인 셈이다.
2018년 12월 31일 밤, 시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타종식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굴뚝 아래에서도 두 노동자를 응원하는 타종 행사가 조그맣게 열렸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넘나들었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고용 승계와 약속 이행을 해달라’는 신년 메시지와 소망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모두가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연초, 회사 측에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두 노동자를 굴뚝 위로 내몬 건 누굴까.’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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