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한 층의 전체 고객을 다 합쳐도 5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다. 연말을 맞아 쇼핑 고객이 대거 몰린 바로 옆 백화점 매장과는 정반대 분위기였다. 비슷한 시각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곳에서 쇼핑하던 중국인 관광객 팡커(25)씨는 “쾌적한 것은 좋은데 매장에 사람이 너무 없어 의아했다”며 “명동에서 품절이었던 화장품을 사러 왔는데 입점조차 돼 있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주요 유통그룹들이 지난해 서울 강남에 잇따라 면세점을 개장하며 이른바 ‘강남 면세점 시대’가 열렸지만 당초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라는 장밋빛 전망에 취해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매장 수를 늘린데다, 기존 서울 강북 지역 면세점과 큰 차이 없는 서비스가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신규 오픈’ 효과에도 불구하고, 3개월 누적 매출이 784억원에 불과했다. 여전히 강북에 자리 잡은 롯데면세점 소공본점(3조3,160억원), 신라면세점 서울점(2조1,345억원), 신세계면세점 명동점(1조 4,898억원) 3곳의 매출이 전체 면세시장 매출 14조 870억원(지난해 9월 기준)의 48.1%를 차지하고 있다.
방문객 수가 적은 것은 아직 개장 초기인 점도 있지만, 고객 수요에 비해 매장 수가 급격히 늘어난 면세점 시장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서울 시내에 면세점을 추가로 열기로 하고, 대기업들이 입찰 경쟁에 뛰어든 2015년만 해도 면세점 사업은 발을 들이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알짜 사업으로 통했다. 하지만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 영향으로 면세점 주요 고객이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데다, 서울에만 5곳의 신규 면세점이 추가로 생기면서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유통기업들은 강남 면세점 개장 시기를 당초 2017년에서 1년 정도 늦췄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북 면세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매장 구성도 관광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쿠요우여샹(27)씨는 “명동 지역 면세점과 다른 점이 뭔지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강남 진출 당시 각 면세점들이 내세웠던 ‘차별화 전략’도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현대면세점 무역센터점은 각종 회의ㆍ전시 시설이 몰린 코엑스 인근이라는 이점을 살려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문한 외국인 남성 고객을 공략할 ‘하이엔드 남성존’을 만들었다고 홍보했었다. 그러나 무역센터점의 한 영업 직원은 “그런 콘셉트의 공간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고, 남성복 매장 직원도 “비즈니스차 방문한 고객은 많지 않다”고 털어놨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유행에 민감한 SNS 스타들을 붙잡기 위해 전문 조명 및 음향 시설 등을 갖춘 사진 촬영 공간 ‘스튜디오S’를 마련했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이용률은 저조했다.
면세점 측은 강남 지역을 찾는 관광객 수가 증가하고 있어 면세점 이용객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가로수길과 서래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성형 수술을 받기 위해 압구정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증가하는 등 최근 럭셔리 관광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강남권 면세점도 곧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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