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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새해엔 기업 간 ‘칸막이’가 없어지기를

입력
2018.12.31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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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TV까지 세계 1위를 석권한 삼성에도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하며 뛰어들었지만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5년 만에 물거품이 된 자동차 사업이다. 각각 정보기술(IT)과 자동차 분야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굳건해진 것도 삼성이 자동차에 손을 댄 게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졌다. 이후 삼성과 현대차는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기들만의 연합군(협력사)과 함께 독자적인 왕국을 구축했다.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교집합은 보여주지 않았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한국의 가전업계 라이벌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철저한 선 긋기를 통해 각자의 영역을 사수했다. 두 기업은 생산하는 가전 종류가 흡사하고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모듈, 배터리 등 핵심부품을 계열사를 통해 조달하는 방식도 닮았다.

협력사들은 양쪽 모두에 부품을 공급할 여지가 있겠지만 자신이 속한 그룹이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면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주요 협력사들까지 같은 그룹 내에서만 거래를 지속하는 소위 전속 관계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력산업 협력업체 경쟁력 저하의 원인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2017년 대기업에 전속거래로 묶인 중소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1%포인트 이상 낮았다. 전속 관계 협력사들은 국내외 다른 업체와 거래할 경우 기술 유출을 빌미로 대기업의 직간접인 통제도 받았다고 한다. 산업연구원은 “효율적인 공급망과 안정적 판매처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압축성장 시기에는 대기업이 성장하면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협력사도 양적 팽창이 가능했지만 세상은 변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5세대 이동통신(5G) 등이 전 세계 산업의 화두가 되며 IT와 가전, 자동차 등 전통 산업들간 경계가 희미해졌다.

2018년에는 각 그룹들 간 칸막이에도 균열이 감지됐다. 삼성전자는 대만 폭스콘에 인수된 샤프가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납품물량을 대폭 줄이자 TV시장 천적인 LG전자에 LCD를 공급하는 LG디스플레이로 눈을 돌렸다. 당시엔 생산물량을 유지하기 위해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LG디스플레이 부품을 적용한 TV 생산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로 봤다. 2016년 삼성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발화로 위기를 겪었을 때도 삼성은 중국 기업에 손을 내밀었지 가까이 있는 LG화학의 배터리는 쳐다 보지 않았다.

배터리 업계에서 경쟁하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지난달 차세대 배터리 원천기술 확보와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동 펀드를 조성하고 연구개발에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나, 정유업계 라이벌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양사 주유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함께 시작한 택배 서비스도 새로운 시도다. 지난달 현대차그룹 계열사 기아자동차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발표한 것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런 흐름은 제조업 분야의 빠른 발전으로 우리 주력 산업을 잠식하는 중국 기업들이 강력한 ‘공동의 적’으로 부상했고, 주요 기업들에서 명분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3, 4세 경영시대가 본격화한 영향 등으로 풀이된다.

해외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년 경제 성장률을 일제히 2.3% 수준으로 낮춰 잡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성장률 전망도 암울하다. 부정적인 경제 기조 속에 새해에는 애써 외면했던 국내 기업들간 협업에 더욱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기업을 이끄는 경영진들은 더 잘 알 것이다. 글로벌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적과의 동침’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걸.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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