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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바 쪼개기

입력
2018.12.31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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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가 자주 거론된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을 이끈 급진 지도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후 생필품 가격이 앙등해 민심이 격동하자 “어린이들은 값싼 우유를 먹을 권리가 있다”며 우유 값을 반값으로 낮춰 고시했다. 고시 가격보다 비싸게 우유를 팔면 차익의 두 배를 벌금으로 내게 했다. 그러자 낙농업자들은 젖소를 팔아 치웠다. 건초 값을 감안하면 반값 우유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건초 값도 낮췄다.

□ 부작용은 더 커졌다. 건초업자들 역시 수지가 안 맞는다며 생산과 납품을 포기하고 업종을 바꿨다. 젖소가 줄고 건초도 없어 생산이 급감할 수밖에 없는 우유는 이제 암시장에나 가야 비싸게 살 수 있는, 부자만의 식료품이 됐다. 로베스피에르는 서민을 위한 선정(善政)을 펼쳤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서민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냈다. 무지(無知)는 악(惡)보다 더 나쁘다. 현실을 통찰하지 못한 무지한 선정이 악정만큼 나쁜 결과를 부른 사건이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였던 셈이다.

□ 문재인 정부에서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좋은 일이라며 애써 시행한 정책이 나쁜 부작용을 키운 경우가 빈번했다. 초기 부동산정책이 그랬고, 최저임금은 가장 치명적인 경우다. 인상은 당연하지만 잔뜩 가라앉은 경제 현실이 감안됐어야 했다. 앞뒤 없이 대폭으로 올려놓고 보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비명이 하늘을 찌르게 됐다. 그렇다고 저임금 근로자들이 득을 본 것도 아니다. 임금 급등 부담에 고용자들의 일자리가 줄어 아예 일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경우가 많아졌다.

□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주휴수당도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로 전락할 위험이 커 보인다. 근로기준법 상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일엔 일을 하지 않아도 1일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그게 주휴수당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시급 산정 때 주휴수당을 받는 유급휴무 시간을 산입키로 했다. 그러자 현장에선 주휴수당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주 15시간 미만 근무 조건의 아르바이트만 뽑는 ‘알바 쪼개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일이 어쨌든 다시 한 번 그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위협하는 상황을 낳게 됐다. 답답한 일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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