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생 산 성 박 사(4)
길브레스 저
오일로(吳一路) 역
〈처음 읽으시는 독자에게〉 본 소설은 1948년 ‘베스트·셀라스’(*best sellers)의 하나로 그 후 수 개 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 원명(原名) “CHEAPER BY THE DOZEN”(다스로는 싸진다)을 요약 번역한 것이다. 아이들을 12명[일타(一打)]이나 낳은 다복한 가정에서 유모라스(*humorous)한 생활이 버러지고(*벌어지고), 더구나 생산성 전문가인 아버지 ‘길브레스’의 가정의 생산성화로 말미암은 색다른 유-모아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그의 장남이 회상조로 그려낸 가정소설이면서도 생산성이 생생히 유-모아 가운데 살아 있는 흥미로운 이색작인 바, 단편적으로 읽어도 미소를 자아내는 호편(好篇)일 것이다. (역자) |
편도선 수술의 동작연구
가족이 병이 나면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일에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나. 도대체 이렇게 많은 식구인데, 한 사람 병자 때문에 전 식구의 활동이 방해되어서는 안 되거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너희들 의무다.”
(*우리들은) 홍역과 백일해에 걸린 외에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의사가 오는 일이란 여간 없었기 때문에 의사만 보면 어머니가 어린애를 낳는 것으로 알았다.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홍역을 드려놨기(*들여놨기) 때문에 마-사(*Martha)를 빼놓고는 어린애 모두 다 병에 걸려버렸다.
2층 맞붙은 큰 침실은 한 편이 사내애들, 또 한 쪽은 계집애들 병사로 변해 버렸다. 모두들 열이 나고 가려워서 못 견디는 날이 23일 계속되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대강 신세를 진 바-톤(*Barton) 선생은 “걱정할 것은 없어요.” 하였다. 이 의사 선생은 퍽 콸콸한 성미(性味)로서 아버지와 뜻이 맞았다.
“길브레스 선생. 당신네 애들은 병이 잘 안 드는군요. 그러나 온 식구가 한꺼번에 병이라도 난다면 전 뉴-쟈-시(ew Jersey) 주의 공중위생 통계는 억만징창(*엉망징창)이 되어 버리지요.”
“그건 또 왜 그러지요?”
“나는 매주 내가 취급한 전염병 환자 수를 당국에 보고하게 되어 있읍니다. 보통 내가 1주일간 취급하는 홍역 환자 수는 두 사람 정도지요. 그런데 하루 동안에 11건이나 있었다고 보고한다면, 아마 이 마을 전체가 격리되고 군내 전 학교가 십중팔구 임시휴교로 될 것 같아요.”
“뭐 지극히 가벼운 홍역 아니예요.”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홍역은 홍역이거든. 그리고 현재 홍역에 걸리고(*걸려) 있지 않아요(*않나요).”
“그렇지만….”
“참 편도선은 댁의 애들도 다 있거든. 그거 싫은 존재거든. 편도선은 당연히 띠어(*떼어)내어야 하지요.”
“나는 아직 띠어낸 일이 없어요.”
“어디 보여주시지….” 바-튼 선생은 명령했다.
“아니, 아무 이상 없어요.”
“잔소리 마시구(*마시고) 입을 벌려서 아-o 하고 해보세요.”
아버지는 입을 딱 벌리고 아-o 하였다.
“그럼 그렇지. 선생 것도 떼(*떼어)내야 되겠는데요. 벌써 띠어야 할 일이었어요. 목이 가끔 아푸지(*아프지) 않아요? 지금은 아푸지 않아요? 어떻습니까?”
“농담마시구려. 난 난생 하루도 앓아본 일이 없어요.”
“희망하시면(*원하시면) 그대로 두지요. 뭐 아픈 꼴을 당하는 것은 선생님이시니까. 그러나 애들 것은 참말로 떼어내야 하겠어요.”
“그건 논의해서 결정합시다.” 아버지는 이렇게 약속하였다.
홍역 소동이 끝난 며칠 후였는데, 아버지는 어느(*여느) 외과수술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동작연구를 외과수술에 적용해 보려고 하였다.
“외과의는 숙련 기계공과 크게 다를 것이 없거든. 그러나 숙련공 정도로 숙련되지는 안 했지만(*못 했지만). 만약 외과의 동작을 연구할 수 있다면 수술의 스피-드를 빨리 할 수가 있겠는데(*있을 텐데). 수술의 스피-드 여하는 환자의 생사를 정하게도 되는 것이거든.” 하며 아버지는 말했다.
맨 처음 아버지가 부탁한 외과의들은 자진해서 힘을 빌려줄랴는(*빌려줄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건 잘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며 한 의사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우리들은 기계 같은 것은 취급하지 않는데요.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고 똑같은 사람이란 없으니까, 일정한 동작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는 없읍니다.”
“나는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한번 내한테(*나한테) 수술의 영화를 찍도록 해주시요. 잘 되는 것을 보여드리겠어요.” 하며 아버지는 고집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수술실에 영화설비를 할 수 있는 허락을 얻었다. 필림(*필름)이 현상된 다음 아버지는 응접실 영사기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의사와 간호부는 하-얀 옷을 입고 모자에는 번호를 써서 구별하고 있었다. 환자는 앞쪽 수술대에 누워 있다. 좌단(左端)에는 눈에 쌓인 알프스 산처럼 하-얀 씨-쓰(*sheet)를 쓴 것이(*존재가) 있다. 이 알프스가(*알프스를) 삥 돌아 이쪽을 보면 손에 스톱·웟치(*stopwatch)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캬메라 앞에서 웃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가장(假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복부 수술을 의사가 솜씨 있게 빠르게 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우리 뒤에서 크랑크(*crank)를 돌리고 있는 아버지는 “이것도 저것도 다 얼간(*얼간이)들 같으니.” 하고 줄곳(*줄곧) 외치고 있다.
“저 얼간들 보렴. 모자에 3번이라고 쓰인 의사 말이야. 지금 뭣을 하는가 잘 봐라. 수술대 뒤를 빙 한 바퀴 걸었지? 저기 손을 뻗쳐서 도구를 집어 들었다. 들기는 들었으나 결국 그것이 필요 없게 되었다(*되었잖니). 실상은 이쪽 것이 필요했던 거야. 그래서 그 도구 이름을 말하니, 6번이라고 쓴 간호부가 그것을 들어서 준다. 간호부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있는 거다. 의사의 왼손을 보렴. 멍하게 놀고 있지 않니. 왜 왼손은 쓰지 않는 거야. 그것을 쓰면 두 배나 빨리 끝나지 않겠어.”
이 영화를 찍은 결과 그 외과의는 마취시간을 15%는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정도로는) 속이(*성이) 시원하지는(*차지는) 않다. 같은 종류의 수술을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 촬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쓸데없는 동작과 좋은 동작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는 영화 같은 것을 찍는 것은 싫다고 했고, 병원에서도 고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점이 문제였었다.
아버지는 그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느 계획을 시작한 이상 그것을 일시중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가락으로 팡 소리를 내며 기운이 났다.
“그렇다, 좋은 방법이 있다. 바-톤 선생이 아이들 편도선을 떼어내라고 했겠다. 무슨 일이 있든 꼭 수술해 버리라고 했거든. 이 실험실을 수술대로 해서 바-톤의 영화를 찍어보자.”
“그렇지만 애들을 몰못트(*marmotte) 대신으로 쓰는 것은 인정미(*人情味)가 없는 듯 한데요.” 하며 어머니는 결심을 못하는 것 같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몰라). 만약 영화를 찍으면서 바-톤 선생이 신경질이 된다든지 하면 동작연구는 그만두고 편도선만 떼지(*떼도록 하지).”
이렇게 하여 바-톤 선생은 영화 캬메라 앞에서 수술을 하기로 승낙하였다.
“맨 나중에 당신 것을 수술합시다.” 하며 의사는 아버지의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집단수술은 시작되었다. 2층 응접실이 모두 병사(病舍)가 되었다. 연령순으로 수술은 차례차례 끝마쳤다.
그러나 영사기사(映寫技士) 고긴(*Goggin) 씨는 이런 수술에는 흥미가 없을 뿐 아니라 비위가 약해서 정면으로 보고는 곧 토하는 정도였으니, 영화에는 정신이 없었다.
맨 나중에 아버지 수술 차례가 왔는데, 아버지는 스파르타의 기질을 보이기 위해서도 자기 수술만은 국부마취만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나 할머니는 물론 바-톤 선생도 전부 반대했으나 아버지는 도무지 듣지 않았다.
이렇게 큰소리는 했지만, 막상 수술이 끝나고 한 시간 후에는 통증 때문에 의식을 잃고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2주일간 쭉 누웠다. 이것은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최초의 질환이었다.
하루는 편지 속에 사진기사 고긴 씨로부터의 엽서도 섞여 있었다.
“길브레스 선생. 대단히 미안한 말씀이오나 영화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읍니다. 저는 안쪽 렌스(*lens)의 걋브(*cap)를 떼는 것을 잊어 먹었읍니다. 참 죄송합니다. 고긴 백(白).
추신 저는 사직하겠읍니다.”
아버지는 이불을 걷어 제치고 벌떡 일어났다. 2주일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놈 저승에까지도 따라갈 테다. 그놈 편도선을 뿌리째 뽑아버려야지. 사직한다구? 당치도 않지. 이쪽에서 파면이다.”
후렛슈(*flesh)와 장례식
동작연구와 천문학 다음으로 아버지의 도락(道樂)은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동작연구의 사진과 결부시켜서 선전용 사진을 찍는 것에 탁월하였다. 뢰밍톤(*Remingtion)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리들이 텃취(*touch)·시스템으로 타이프를 찍고(*치고) 있는 1권짜리 뉴-쓰(*news)영화를 제작했다. 그 후 샤-프·펜실(*sharp pencil) 회사에서 목제연필을 한 더미 장사(葬事)하는 광경을 사진에 찍으려고 생각했다.
하인(下人) 톰은 짐짝 상자로 진짜와 다름없는 까만 관을 만들었다. 몇 주일 걸려서 우리들은 그 관을 꼭(*꽉) 채울 수 있을 만한 연필을 사드렸다(*사들였다).
우리들은 이 관을 해변 사장(沙場)에 운반했다. 그리구선(*그러고선) 얕은 구명(*구멍)을 팠다. 그곳은 한적한 곳이었다. 가족 중에 누가 병이 들어 죽은 것으로 생각한 근처 사람들은 쌍안경으로 우리 행동을 일일히(*일일이) 바라보고 있었다.
일동은 연필관을 파뭇고(*파묻고) 난 다음 다시 파내었다. 아버지의 주장에 의하면 나무연필의 재고량이 없어지면 샤-프·펜실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새) 상등(上等) 연필을 내버릴 수는 없다고 해서 집으로 다시 가져간 것이다. 다음해 여름―그 당시 아버지는 세탁기계 회사의 상담역을 하고 있었다―우리들은 또 세탁판이나 링가-(세탁물을 짜는 도구)를 같은 방법으로 장사(葬事)했다.
우리들의 사진이나 기사가 게재되며는(*게재되면)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공격당하기가 일수(*일쑤)였다.
“왜 너희들은 나무로 만든 연필을 학교에 가져오니? 신문기사에 너희 아버지와 너희들이 연필 상자를 묘에다가 파묻었다는 것을 읽었단 말이야.”
또한 때로는 선생들이 기사를 인용해서 읽는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목욕탕의 표(表)라든가 외국어의 레코-드라든지 가족회의의 결의 등에 대해서 읽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우물우물 하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어데서 구두를 판다든가 하는 보통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도 있으며, 또 애들이 하나나 둘 정도 되었더라면 하구(*하고) 생각한 일도 있었다.
부인기자
우리들 입장으로 봐서 가장 난처한 기자는 어머니한테 흥미 본위의 ‘이야기꺼리’를 주우러 오는 부인(婦人)기자였다. 어머니는 이런 대담에는 대강 아버지도 동석해 달라고 했다.
자기 선전은 결코 하지 않고 하드래도(*하더라도) 최소한도에 그친다는 것을 목견(目見)해 달라는 뜻이었다.
저녁 식사 때 아버지는 그러한 대담기사를 큰소리로 읽는 것을 좋아했고(*좋아했는데) 어머니의 몸짓이나 표정을 과장해서 연출하면서 읽는다.
“길브레스 여사는 수많은 꼬마들에게 둘러싸여 옛날이야기를 읽으면서 앉아 있다. 장녀 안(*Anne) 양은 사교계에 이제 나갈 연령에 달하였으며, 봐이오린(*violin)의 전문가를 희망. 아-네스틴(*Ernestine) 양은 화가. 마-사(Martha)와 후렝크(*Frank)는 아버지 업을 계승. 기자는 12명의 애들을 가진 위대한 어머니에게 ‘당신의 명예있는(*명예로운) 학위를 알려주세요,’ 하고 물었다. 그녀의 볼에는 정숙하고 수줍은 붉은 빛이 떠오르며 입을 약간 오므리고 어깨를 추끼며(*추기며) 정색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시늉을 하며 계속 읽는다.
“‘저는 저의 이타(二打; 두 타스)나 되는 직명(職名)이나 첵코스로바키아(*Czechoslovakia)의 과학회원이란 사실 이상으로 장난꾸러기 12명의 아메리카의 아이들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길 여사는 말하였다.”
“아유, 싫어!” 어머니는 참다못해서 소리친다.
“난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후렝크! 당신 그때 같이 들어보셨지 않아요. 그 부인기자는 어디서 그런 것을 듣고 왔을까?”
아버지는 픽 웃으며 또 읽기 시작한다.
“길브레스 씨―시간연구의 대가―는 부인의 사상(思想)의 실마리를 끊지 않으려고 발굼치(*발꿈치)로 소리를 내지 않고 들어섰다. 씨는 뚱뚱한 몸집이나 퍽이나 활동적으로…”
아버지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며 얼굴을 찡그리고 신문을 던졌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영어 가운데서 이놈의 뚱뚱하게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안 든다. 전부 조작이란 말이야.”
우리들을 방문한 어느 신문사의 사진기자는 우리들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려고 안을 짜냈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밖에서 촬영하는 것이 광선 형편이 좋다고 사진기자가 말하기에, 그것도 그럴 상 싶다고 아버지는 테-블(*table), 의자 등 모조리 뜰에 내어놓았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게 하였던 것이다. 영화관에서 상영된 뉴-쓰 영화에는 ‘시간절약가 길브레스씨 가정의 식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 영화는 보통의 10배나 되는 속도로 상영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이런 인상을 받는다.―우리들은 식탁에 앞을 다투어 달려간다. 이리저리 접시를 나누고 굶주린 이리떼들처럼 컥컥대며 씹어 먹고 식탁에서 쏜살같이 퇴산(退散)한다―이 사이가 겨우 45초!
이 영화를 찍은 촬영기자가 우리들에게 밖에서 찍자고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뜰에 널어진 기저구(*기저귀) 전람회도 화면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우리들은 전 가족이 난다겟드의 별장으로 가는 것이 연중행사였다.
아버지는 별장으로 떠나기 전에 여름방학 동안에는 일정한 공부는 안한다는 성명(聲明)을 냈다. 그러기에 외국어 레코-드도 교과서 류도 가져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충실히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으나, 실상은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비공식으로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모르스(* Morse)기호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점심때 아버지는 이렇게 제안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모르스기호(*모스부호)를 외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우리들은 이 제안에 대해서 절대 반대를 주장했다. 기호 같은 것을 외우는 것은 싫고, 가을에 학교가 시작할 때까지 일절 공부는 하지 않기로 했거든.
“공부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외운 사람에게는 상품이 나온다. 외우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외어두었으면 좋았을 걸- 하구 후회할 꺼야.”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뼁끼(*페인트)와 까만 에나멜 관(罐;*통)을 가지고 세면소에 틀어박혀 문을 잠궈 버렸다.) 거기서 아버지는 ABC를 기호로서(*기호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일간이란 동안은 온 집 하-얀 벽에 모-르스 기호를 쓰는 데 분주하였다. 애들 침실 천정(天井)에는 알파베트(*alphabet) 기호와 학습참고의 말이 쓰여 있었다. 그 단어 악센트가 여러 가지 문자에 대한 기호를 상기시켜 주는 방식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A·돈·쓰-, a BOUT B·쓰-·돈·돈·돈, BOIS-ter-cus-ly C·쓰-·돈·쓰-·돈, CARE-less CHILD-ren D·쓰-·돈·돈·돈, DAN-ger-ous.
우리들이 침대에 누우면 기호가 눈에 띠우기(*띠기) 때문에 자연히 쓰-·돈·돈 DAN-ger-ous 등등으로 가물가물 졸면서 외워 버렸다.
아버지는 현관과 식당 벽에 무엇인가 비밀 말을 써 놓았다.
“뭐라고 써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여러 가지에 대해서야. 비밀 이야기라든가 퍽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들은 어슬렁어슬렁 침실에 들어가서 기호를 종이 쪼각에(*조각에) 베껴 썼다. 이후부터는 아버지의 비밀의 문장을 해득(解得)하는 데 열중했다.
이리하여 아버지 계획대로 수 주간도 채 안되어서 우리들은 상당수의 기호를 암기해 버렸다. 그리구선(*그리고선) 테-블에서 접시나 칼로 두들기면서 통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2명의 애들이 이것을 시작하며는―수신계(受信係)보다 발신계(發信係) 편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그 소란이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호를 벽에 쓰는 방법에 성공한 아버지는 거기에 맛을 부쳐서(*붙여서) 또 명안(名案)을 생각해 냈다. 종과 횡이 각기 천 본(千本)씩 선이 든 도합 백만의 간목(間目)이 있는 그라프(*graph) 용지를 부쳐(*붙여) 놓았다.
“너희들 100만이란 숫자를 자주 듣겠지만 100만의 실물을 단번에 본 일은 없을 꺼야. 100만 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간목의 수만큼 딸라(*dollar)를 갖고 있는 거야.”
“아버지는 그만큼 갖고 있어요?” 하고 빌이란 놈이 묻는다.
“아-니.” 아버지는 맥없는 표정을 한다.
“아버지는 그 대신 100만의 애들을 갖고 있지 않아(*않니)?”
식당에는 메-타(*meter)와 피-트(*feet), 키로그람(*kilogram)과 폰드(*pound)의 환산표가 써 부쳐(*붙어) 있고, 현관 벽에 쓴 보기에 이상야릇한 기호는 하나하나 사-브리그(*therblig)를 표시하고 있었다.
사-브리그라는 것은―좀 더 좋은 말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만―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용어인데, 누구든지 이를 열일곱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생활을 편하게도 할 수 있고 고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으른뱅이(*게으름뱅이)는 자기의 사-브리그를 가장 유효하게 쓴다고 아버지는 믿고 있었다. 즉 쓸데없는 움직임을 한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태만하다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새로운 동작연구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공장에서 제일 게으른뱅이를 골라서 사진을 찍었다.
사-브리그란 말은 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까꾸로(*거꾸로) 철(綴)해서 만든 것이다.
Gilbreth―Therblig
사-브리그는 아버지의 연구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접으로는 쓰레기통의 발판 반사대(反射臺)나 공장 노동자용의 특별의(*특별) 의자, 타이프라이타의 설계변경, 조립작업의 어느 양식 등을 산출해낸 것이다.
아버지는 리-갈(*Regal)구두회사 사원에게 사-브리그를 사용하면 7초로써(*7초에) 손님의 신을 벗기고 22초로서(*22초에) 구두를 신기고 끈을 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브리그라 함은 동작이나 사상의 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세면소에 수염을 깎으러 갔다고 하자. 얼굴에는 비누 버끔(*거품의 사투리)이 칠해져 있고 면도(面刀)를 들면 되게끔 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그는 면도가 어데(*어디) 있는가는 알고 있으나, 먼저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제1(第一)의 사-브리그 ‘찾는다’이다. 다음은 찾아내서 눈을 뜬다로 ‘찾아낸다’가 제2의 사-브리그이다. 제3의 사-브리그는 ‘골른다(*고른다)’로, 제4의 사-브리그는 ‘’잡는다‘에 연결된다. 제5오는 ’운반‘으로 면도를 얼굴에 가져가는 일이다. 제6은 ’위치를 바로잡는다‘로 얼굴에 갖다대는 것이며, 이 이외로 11의 사-브리그가 있어서 최종에는 ’생각한다‘로서 끝난다.
아버지가 동작연구를 할 때에는 어느 작업이고 일응(一應) 사-브리그로 나누어본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동작에 요하는 시간을 짧게 하는 연구를 했다. 조립하려는 부분품을 어느 것은 적(赤), 어느 것은 녹(綠)으로 색을 갈라서 칠한다. 그러면 ‘찾는 것’의 동작에 걸리는 시간을 어느 정도 절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브리그에는 하나하나 부호가 붙어 있었다. 예(例)에 따라 벽에 그 부호를 쓰기가 불행이지(*힘들어서 그렇지), 접시 씻기, 청소 등 가정일 구석구석까지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차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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