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황금돼지 해] 우리 신화ㆍ설화 속 돼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돼지는 신화나 설화에서 복의 근원, 다산의 상징, 혹은 집 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도 묘사된다. 반면 속담에서는 탐욕스럽고 게으른 동물로도 그려지는 양가성을 지닌다.
돼지는 우리나라에서 약 2,000년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철기시대 이후로 완전히 가축화된 돼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받게 됐다.
국내 신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그려진다.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편에서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 왕이 이를 잡아오라 시킨다.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돼지를 겨우 잡는데, 그 곳의 산세가 뛰어나 이를 왕에게 알리고 도읍을 옮기게 된다. 돼지가 수도를 점지해 주고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산상왕조편에서는 돼지가 아들을 점지해준다. 산상왕 12년 겨울 제사에 올릴 돼지가 달아나 한 처녀가 잡아주었고, 그 처녀와 왕 사이에 생긴 아들이 동천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굿이나 고사를 지낼 때 돼지가 없으면 안 된다. ‘삼국사기’, ‘동국세시기’ 등을 보면 고구려, 조선시대에 돼지를 제사 제물로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늘날에도 돼지는 고사나 개업 행사에 가장 중요한 제물로 등장한다. 동물민속학 전문가인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를 제전의 최고 희생으로 쓰는 풍속은 고구려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민속”이라고 했다.
돼지는 길상의 동물로 재물과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부터 돼지가 들어오는 꿈은 길하고, 나가는 꿈은 흉하다 했다. 태몽에 돼지가 나오면 부자가 될 자식을 낳게 된다고 말한다.
설화 속 돼지는 재물과 가정의 신인 ‘업’을 상징한다. 전라도 지방에서 내려오는 ‘업돼지’ 설화에서 돼지는 재산을 불려주고 그것을 지키기까지 한다. 어느 날 주인의 눈에만 보이는 돼지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고, 10년 후 그 집안은 천 석 갑부가 된다. 하루는 이 돼지가 사냥꾼들을 유인해 하룻밤 묶게 했고, 마침 그날 밤 찾아온 떼강도들을 사냥꾼들이 물리쳐 그 집의 재물을 보호했다.
이처럼 돼지는 민속적으로 신이하고 길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탐욕과 게으름, 더러움의 대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속담 ‘돼지는 우리가 더러운 줄도 모른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등은 돼지를 지저분하고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하게 한다. 강원 금화군의 최치원 설화에서는 금돼지가 고을 원님의 부인을 납치해 이를 사슴가죽으로 물리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충남 부여에는 돼지가 여우의 말을 듣고 꿀을 많이 먹어서 비계살이 생기고 꿀꿀 소리를 내게 됐다며 우둔한 면을 강조한 이야기도 있다. 김종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표한 학술지를 통해 “돼지의 부정적인 모습은 생태적인 의미로서 읽어낸 결과이며 순수한 상징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며 “돼지가 풍요로운 존재로 우리에게 각인된 사실은 뒤집기 어렵다”고 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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