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세대와 성별을 묶어 ‘평범하다’고 표현한 두 사건의 관련 기사를 보며 과연 한국 사회에서 평범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 베스트’에 실제 여자친구의 불법 촬영 사진이나 불법 도용한 사진을 여자친구라고 올린 20~30대 남자 회원들에 대한 것이다. 한 달여 전에 벌어진 이 사건으로 붙잡힌 남성은 총 13명이었으며, 언론은 이들을 묘사하면서 “평범한 직장인이나 대학생”이었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한 사건은 경남 남해경찰서가 낙태한 여성을 색출하기 위해 특정 산부인과를 이용한 여성 26명에게 참고인 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낙태 사실을 취조한 건이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경찰은 “낙태죄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과 평범한 여성을 전과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해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선 사건에서 평범한 한국의 젊은 남성으로 지칭된 이들이 저지른 일과, 뒤의 사건에서 평범한 한국의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다가 겪게 된 일의 격차를 보면 두 성별의 평범 사이 격차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이 사회에서 남성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었는지를 강조하는 언론의 의도가 늘 궁금하다. 그가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 정확하게는 범죄가 발각되기 이전까지는 평범한 이들과 다름없이 살아갔다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관성적으로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학업이나 직장을 포기하고 범죄를 저지를 것을 예고하고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보도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라도 해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남성들에게 범죄 행각을 예견할 법한 이상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이 범죄는 일회성일 뿐임을 강조하는 것인가? 언론은 건조한 서술인 척하고 있지만, 당연히 후자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건들이 사법부로 넘어가면 평범함은 모조리 참작된다. 이 범죄자 남성은 초범이기 때문에,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 서른 살이 넘어서도 부모가 잘 훈육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평범하고 착실한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 한국 남자로 살아갈 창창한 미래가 아깝기 때문에 감형되고 참작되고 이해받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가도 일상을 침범당한다. 징벌과 보복의 성격이 있는 죄를 여성에게 적용할 때, 한국 경찰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놀라울 정도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현실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성 개개인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한국 사회의 평범한 여성들은 24시간 불법 촬영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이 불법 촬영과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무려 11만명의 여성이 불법 촬영과 편파 판결에 관련된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한국 여성에게는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이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20대 남성이 왜 그토록 억울해하는지, 왜 그토록 분노하는지를 살피기 전에 이 낙차를 보았으면 한다. 이 평범과 저 평범 사이의 거리는 왜 이렇게까지 먼가. 평범한 20대 남성의 분노에는 정당까지 나서 대변하고 논평하는데, 왜 평범한 20대 여성의 목소리는 분노로조차 호명되지 않는 것인가. 2018년은 평범한 한국 남자의 현실과 평범한 한국 여자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매일 다른 사건으로 깨닫는 한 해였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발한 여성들과 함께하기 위해, 불법 촬영에 반대하며, 낙태죄 폐지를 외치며 길에서 시위했다. 2019년에는 이런 일들이 평범한 한국 여성의 삶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2019년에는 여성도 평범한 시민이기를.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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