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정치ㆍ사회 현안에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여성에게 주문한 적이 없는 물건들이 배송되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여성을 표적으로 한 괴롭힘이라는 점에서 극우ㆍ보수세력의 ‘여성 혐오’ 행동으로 보인다.
27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무라카미 사토코(村上聡子) 기타규슈(北九州)시의원(무소속)의 사무실에는 지난 6~10월 5개월간 총 10회에 걸쳐 다양한 물건들이 배송됐다. 처음에는 3만엔(약 30만원) 상당의 브래지어가 배송됐고, 이후 녹즙과 건강식품 등 주문한 적이 없는 상품들이 계속 배송되자 수신을 거부했다.
판매업체에 문의한 결과, 신문에 실린 통신판매 광고와 전단지에 첨부된 엽서를 통해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자는 무라카미 시의원으로 적혀 있었지만 생년월일란에는 무라카미 시의원의 생일과 다른 날짜가 적혀 있었다. 우편물에 찍힌 소인은 기타규슈가 아닌 야마구치(山口)현으로 찍혀 있었다.
무라카미 시의원이 4월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강연에서 사회를 맡은 것이 계기였다. 마에카와 전 차관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궁지에 빠트린 가케(加計)학원 의혹을 폭로한 인물로, 일부 신문은 해당 강연과 관련해 “기타규슈시 교육위원회의 중립성에 의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가 알려지면서 무라카미 시의원 트위터에는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고, 의회사무국에도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5월 의원사무실에 “죽어라”, “너의 가족을 저주한다” 등이 적힌 두 통의 협박편지가 도착한 이후 대금상환 물건이 배송되기 시작했다.
무라마키 시의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사실을 알리자, 전국적으로 이와 유사한 피해 사례들이 트위터를 통해 올라왔다. 고타키 히로코(小滝浩子) 변호사는 지난해 1월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같은 물건이 계속 배송됐다. 그는 차별주의자들이 만든 사이트인 ‘호슈소쿠호(保守速報)’운영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측 대리인을 맡았다. 헌법과 여성 권익 옹호 활동으로 알려진 오타 게이코(太田啓子) 변호사에게도 최근 2년간 5회에 걸쳐 유사한 일이 발생했고, 히시야마 나호코(菱山南帆子) ‘허용하지마 헌법개악ㆍ시민연락회’ 사무국 차장에게도 9월 사무국에 사흘 연속 총 8,000엔(약 8만원) 상당의 화장품, 이달 26일엔 2,592엔(약 2만6,000원) 상당의 화장품이 도착했다.
오타 변호사와 히시야마 차장에게 배송된 상품도 야마구치현 소인이 찍혀 있었다. 야마구치현은 아베 총리의 지역구가 있는 곳이다. 무라카미 시의원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있는 여성에 대한 공격”이라며 “피해자들과 연대해 실태를 적극 밝혀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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