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처음 분쟁지역 미군 방문... 셧다운 등 악화된 여론 반전 카드
“美, 세계 경찰 계속할 수 없다” 부유한 국가 방위비 분담 재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이라크의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분쟁 지역의 미군 부대를 찾은 것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리아 철군,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 등으로 악화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카드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도 시리아 철군을 정당화하는 한편, 부유한 국가에 대한 방위 비용 분담을 재차 강조하고 ‘세계 경찰론’ 폐기도 거론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 과정에서도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인 25일 오후 늦게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이라크를 향해 떠나 26일 오후 7시 16분께 시리아와 인접해 있는 바그다드 서쪽 알 아사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하고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3시간여를 보낸 뒤 오후 10시50분께 이라크를 떠났다. 이번 방문에는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동행했으며 이달 말 사임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수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플로리다에서 연말 연시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셧다운 사태로 이를 취소했던 터라 이번 방문은 셧다운 사태 이후에 전격적으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년 동안 분쟁지역 내 미군 부대를 찾지 않아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지난달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애초 계획했던 앤마른 미군묘지 참배 일정을 취소해 구설수에 올랐다. 시리아 철군과 매티스 장관 사퇴에 따른 역풍을 잠재우기 위해 위험 지역으로 나선 셈이다.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초기인 2003년 11월 추수감사절 때 이라크를 방문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4개월 후인 2009년 4월 이라크를 깜짝 방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방문에서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시리아에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면 이라크를 기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리아 철군에 따른 역내 불안 해소에 나섰다. 하지만 시리아 철군 문제에 대해선 “우리는 이슬람국가를 99% 물리쳤다. 이제는 장병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계속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우리 나라를 방어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날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는 발언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세계 경찰론’ 종식을 거론한 것이다. 그는 “나는 많은 편지를 서명했는데, 당신의 아들과 딸이 전사했다는 편지를 고국의 부모들에게 보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오랫동안 충분히 해 왔다”고 말했다.
부유한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용하면서 방위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그는 “미국이 모든 부담을 지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며 “부유한 국가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을 계속해서 이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서 “부유한 국가들은 그 많은 군대에 대한 비용을 미국이 지불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돈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군은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보지조차 못한 나라에도 있다”며 “솔직히 말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이라크 깜짝 방문을 자신의 시리아 철군 방침 방어 및 ‘세계의 경찰’ 역할론에 대한 종식을 선언하는 기회로 활용했다”며 “다국적 동맹국들로부터 철수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방어하려고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신임 국방장관 임명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는다”며 패트릭 섀너핸 장관 대행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에 많은 돈을 주는데, 이것이 낭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곳곳에서 비용이 초과되는데 섀너핸은 보잉에서 아주 잘 했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체인 보잉사에서 30년간 근무한 섀너핸 장관 대행을 통해 국방비 효율화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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