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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30대ㆍ비주류ㆍ제3당 후보 부켈레, 해묵은 좌우파 구도 깨트릴까

입력
2018.12.27 15:00
수정
2018.12.27 18:36
0 0

내년 2월 3일 엘살바도르 대선

MS-13ㆍ바리오-18 양대 폭력조직 빈민들에겐 정부보다 영향력 커

지난해 10만명당 60명꼴 피살...좌ㆍ우파 모두 “폭력조직엔 무관용”

산살바도르 시장 출신 부켈레, 인프라 투자로 근본 해결 추진

기성 정치권 대한 불신에 힘입어 청년층 호응 얻어내 대권 눈앞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선후보. 산살바도르=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선후보. 산살바도르=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쥐스탱 트뤼도(캐나다ㆍ47),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ㆍ41), 리오 버라드커(아일랜드ㆍ39), 저신다 아던(뉴질랜드ㆍ38), 제바스티안 쿠르츠(오스트리아ㆍ32), 카트린 야콥스도티르(아이슬란드ㆍ42).

미ㆍ중ㆍ러ㆍ일 등 세계 강국의 지도자들이 60,70대인 반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가 가운데서는 30~40대 지도자들이 나라의 운전대를 잡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질린 유권자들은 구 주류와 거리를 두는 비교적 젊은 지도자들의 신선한 리더십을 기대해 이들에게 표를 던졌다. 물론 이 가운데 기존 정치권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지지율이 폭락한 지도자도 있지만, 어쨌든 선거 당시에는 신세대 희망의 상징이었다. 2019년 2월 3일로 예정된 엘살바도르 대선에서도 젊음을 내세운 후보가 각광을 받고 있다. 1981년생, 올해로 37세인 나이브 아르만도 부켈레 오르테스는 제3당 국민통합대연맹(GANA) 후보임에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1992년 내전이 종결된 이래 좌파 민족해방전선(FMLN)과 우파 국민공화연맹(ARENA)이 형성한 기성 양당 구도를 깨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 것이다.

◇조직범죄의 나라 엘살바도르

엘살바도르의 최대 문제는 폭력조직이다. 마라 살바투르차(MS)-13과 바리오-18, 양대 무장조직의 영향력은 빈민들 입장에선 정부를 능가한다. 조직에 ‘찍히면’ 안전한 곳은 없다. 무장조직에 가담하거나, 안전보장을 대가로 비용을 상납해야 한다. 조직에 가담한다 해도 경쟁조직의 공격 대상이 되니 여전히 위험하다. 빈민들은 생계 때문에 쉽게 조직에 끌려들어간다. 대략 15세 때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직원들의 평균연령은 25세다. 물론 이웃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역시 비슷한 곤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엘살바도르에서는 살인사건이 10만명당 60명꼴로 세계 최악의 살인국가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

우파 ARENA와 좌파 FMLN 모두 폭력조직에 대해서는 무관용 정책을 선언했다. 살바도르 산체스 세렌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살인사건이 10만명당 104명꼴로 급증하자 엘살바도르 정부는 경찰의 조직원 대상 무차별 사격을 허용했다. 감옥 현대화에도 투자했다. 조직 고위급은 감옥 안에서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엄중 감시 대상이 됐다. 반면 말단 조직원은 중범죄자들과 격리 수용하고, ‘요 캄비오(나는 변화한다)’라고 부르는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매년 줄어들고 있는 살인사건 수만 놓고 보면 이런 조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남미 조직범죄 연구소 인사이트크라임에 따르면, 살인사건이 감소한 만큼 실종사건이 늘어났기 때문에 총 피해자 수는 엇비슷하다. 인사이트크라임은 대선을 앞두고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폭력 조직들이 경쟁 조직과의 충돌을 최대한 숨기려 하고 있고, 정부는 최대한 살인사건 통계를 낮춰 잡아 선거에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ARENA와 FMLN 모두 선거 기간에는 폭력조직과 협상해 그들의 표를 사실상 사들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사회 인프라 확대 대안 제시한 부켈레

범죄를 진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조직 범죄의 토양이 되는 빈곤과 부패를 극복하는 것도 중대한 과제다. 미국 주간지 타임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은 일찍부터 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신성’ 부켈레에게서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도’ 산살바도르시장으로 재임하던 2016년 당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부켈레는 “경찰력은 두통약과 같다. 범죄 집단을 억누르는 것은 증상을 완화하는 것뿐”이라며 “사회 인프라 투자를 통해 문제의 근본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켈레는 운동장, 도서관, 공원, 시장, 광장, 박물관과 공동체 센터를 건설했고 거리 청년들의 문화인 스케이트보드, 브레이크댄스, 그라피티 등을 적극 장려하면서 ‘폭력 대신 창조’를 역설했다. 그가 2016년 1월 시동한 ‘산살바도르 100% 빛내기’ 캠페인은 산살바도르에 어두운 곳이 없도록 조명을 재정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실제로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진단이 나와 후임 시장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

부켈레는 2017년까지 좌파 정당인 FMLN 소속으로 활동해 왔다. 부유한 사업가 아르만도 부켈레의 아들로도 유명한데, 그는 정치 입문 초기부터 엘살바도르가 공공 교육과 보건 시설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2년 보수정당인 ARENA의 아성 중 하나인 산살바도르 근교 누에보쿠스타클란에서 승리하면서 스타로 떠올랐고, 다음 선거에서는 수도 산살바도르의 시장으로 선출되면서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승승장구하던 부켈레는 2017년 당의 명예를 훼손하고 여성 당원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FMLN에서 제명됐다. 그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고 FMLN이 ‘소수 부패한 지도자’의 리더십 아래 놓여 있다고 반박했다. 이후 오히려 대권 꿈을 꾸면서 제3당 창당을 노렸다. ‘새로운 생각(Nuevas Ideas)’이라는 그의 가설 정당이 등록에 실패하자, 우파 군소정당인 GANA와 손을 잡고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GANA의 정체성과 달리 부켈레 본인은 중도 좌파 성향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선거운동에서 GANA 소속이라는 점은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FMLN 내에서도 일부 중도파를 중심으로 ARENA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부켈레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SNS 적극 활용하는 ‘비주류’ 후보

부켈레의 인기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 때문에 반작용으로 형성된 감이 있다. 2018년 3월 치른 총선에서 산체스 세렌 대통령과 FMLN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ARENA가 압승을 거뒀지만, 충격적인 건 42%에 그친 투표율이었다. 일부 투표자는 총선 투표용지에 ‘나이브 2019’라고 적어두기도 했다. 부켈레의 대선 출마를 기대한 것이다. 두 기성 정당 모두 오랜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ARENA의 전임 대통령 토니 사카는 최근 돈세탁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FMLN의 전임 대통령 마우리시오 푸네스는 니카라과로 도피한 상태로 엘살바도르 검찰은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부켈레 자신도 기성 세력과는 다르다는 점을 적극 부각한다. ‘새로운 생각’이라는 그가 창당했던 신당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 부분이다. 엘살바도르 일간지 ‘엘 디아리오 데 오이’의 리카르도 아벨라르 정치담당기자는 부켈레를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나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비슷한 정치인으로 묘사한다.

또 부켈레는 기성 언론에 의지하지 않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라이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직접 홍보 활동을 한다. 온라인 활동은 산살바도르시장 재직 시절부터 쌓아온 ‘쿨’한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청년층의 더 큰 호응을 부르고 있다. 아벨라르는 “ARENA와 FMLN의 지지층은 나이를 먹었고, 새롭게 성장하는 교육된 젊은 유권자들은 지지정당을 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한때 몽상에 불과했던 부켈레의 ‘제3후보’ 노림수가 청년층의 호응을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드러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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