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갈등ㆍ차별ㆍ혐오ㆍ극혐ㆍ불평등’ 표현 온라인 사용빈도 4년새 3배
가장 많이 쓴 감정 표현은 ‘혐오’… ‘고통+분노+공포’보다 압도적
도처에 절망과 혐오가 넘실댄다. 2019년 대한민국은 무한경쟁, 불평등, 실업, 부채, 빈곤이 두렵고 화나는 이들의 세계다. 동시에 이주노동자라, 여성이라, 노인이라, 성 소수자라, 특정 지역 출신이라, 가난한 자라 미움받는 사회다. 큰 행복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소확행’(小確幸ㆍ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한 줄기 기대를 거는 자포자기 사회, ‘노오력의 배신’을 논하는 불신의 시대. 하필 지금 분노와 혐오가 창궐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력도 능력도 동 난 사람들에게 남은 건 생존주의, 과잉 능력주의, 우열의 논리다. 이들에게 타자는 언제 내 몫을 부당하게 채 갈지 모르는 존재다. 이념, 계층 갈등 등 미처 풀지 못한 난제가 수두룩한데 젠더(genderㆍ성), 세대와 같은 새로운 혐오의 대상이 촘촘하게 쌓였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누가 이 구조를 만들었는지 돌아보기는 쉽지 않다.
모든 이가 조각나고 부서진 파편(破片)이자 파(派)와 편(偏)으로 나뉘어 공감 대신 혐오하고 미워하는 세상. 이른바 ‘파편(破片ㆍ派偏)사회’의 비극이다. 다변화 사회의 성장통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 혐오의 양태를 ‘자전거 타기 반응’이라고 본다. 위로는 고개를 숙이고, 아래로는 발을 굴려 짓밟는 행위. 개인이 처한 불행의 원인을 사회구조나 기득권에서가 아니라 오직 약자에게서 찾는 태도를 일컫는 용어다. 독일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 사회병리적 개념을 대입했던 건 나치 시대였다.
한국일보는 신년기획 ‘파편사회에서 공감사회로’ 시리즈를 통해 이 깊은 상처의 원인을 확인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개인의 힘으로 견디기 어려운 분절화된 사회 속에서 꾸준히 배양되는 절망과 혐오, 그 기제를 직시하고 바로잡으려 한다. 공감제로, 희망제로 시대에 한 줌의 가능성을 찾길, 허무가 넘치는 파편사회에 안녕을 고하길 기대하며.
데이터를 통해 들여다본 2019년 한국은 차별과 혐오가 지배하고 그 바탕에는 고통, 분노, 억울함의 정서가 자리한 사회다. 한국일보가 지난 연말 빅데이터 분석업체 봄마루와 조사한 결과,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의 ‘갈등 키워드’의 버즈량(buzzㆍ특정 주제에 대한 언급량)은 지난 4년간 매년 2배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는 2015년 1월~2018년 12월 갈등의 5개 연관어(갈등, 차별, 혐오, 극혐, 불평등)가 블로그 및 커뮤니티, 포털 웹 카페, 네이버 지식인, 뉴스, 트위터 등 총 4,226만6,925건의 인터넷 공간 게시물에서 사용된 빈도를 분석한 결과다.
단순 언급이 아닌 혐오의 의도를 지닌 텍스트를 별도 추출하기 위해 실시한 ‘확장 키워드’(○○녀, ○충, ○딱, ○형 등 각 영역 혐오표현 포함 53개 낱말) 버즈량 분석에 따르면 혐오 표현 및 각종 비하 지칭어 사용은 2015년 407만4,279건에서 2018년 1,176만1,136건으로 무려 3배(290%)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젠더 영역의 혐오 표현 사용 빈도는 이 기간 12배가 넘는 1,247%로 폭증했다. 분석 대상 텍스트에서 사용된 감정어는 ‘혐오’가 75%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고통’이 12%로 뒤를 이었다.
◇ 혐오에 맞서자 다시 반발혐오가
2015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4년간 연간 2배 수준, 누적 8배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한 ‘갈등의 5개 연관어’ 언급이 최고 10~14배 수준으로 치솟은 건 트위터에서 각종 젠더 이슈가 폭발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각각 ▲강남역 살인사건(2016년 5월) ▲대선 토론회에서의 동성애 반대 발언 논란 ▲게임업체의 성차별적 사상검증 논란 ▲여성 아이돌의 페미니즘 관련 소품 사용에 대한 일부 팬의 반발 논란 등이다.
연관어에 포함된 혐오, 차별, 불평등 그 자체가 늘어났다기보다는, 우선 이 기간 혐오와 차별에 대한 우려, 경계가 비로소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해당 담론은 트위터가 이끌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가해자가 평소 여성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여성 타깃을 기다렸다 살해한 페미사이드(femicideㆍ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하는 범죄)로 여성들이 평소 느꼈던 불안, 공포, 차별이 쏟아져 나온 전환점”이라며 “미소지니(misogynyㆍ여성혐오)가 대중 언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페미니즘 리부트’라 표현해 온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페미사이드라는 구체적 계기를 통해 그간 겪어 왔던 성폭력, 성차별의 집단기억이 공유되고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파급력을 얻게 됐다”며 “이런 혐오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내 성폭력 고발과 ‘미투(#Me Too)’ 고발이 촉발되고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관련 언급이 늘어난 사실 자체는 가치중립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계심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로 거시적으로 보면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성장통, 불협화음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손희정 연구원 역시 “상황의 직시를 위해선 갈등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이때까지 차별당하면서도 싸우지 못했던 이들이 싸우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두고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데 왜 징징대나, 왜 갈등을 키우냐’고 비난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 지금 가장 뜨거운 혐오, 젠더
혐오 및 차별표현, 지칭어 사용의 증가추세를 영역별로 보면 2015년 대비 2018년의 언급량은 각각 젠더 1,247%, 성 소수자 64%, 난민 50%, 세대 23%, 다문화 13%씩 증가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비로소 인지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반발의 에너지도 분출, 동원되는 양상”이라며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양극단, 즉 극단 페미니즘과 반(反)극단 페미니즘이 핑퐁(탁구)처럼 비난을 주고받으며 이슈가 증폭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혐오에 대한 조직적 경계, 경고, 반발이 쏟아지자 이를 억누르려는 혐오도 함께 커져 왔다는 분석이다.
성 소수자와 난민에 대한 혐오 증가는 한국 사회 혐오의 속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로 지목됐다. 신광영 교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위협의 여부나 실재하는 크기와 달리 ‘상상 속의 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라며 “다르고 모르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소수자 중 소수자에게 향하고 있으며, 이런 고립적 태도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언론을 통해 과대 대표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역시 “민족, 문화, 언어, 성, 젠더, 종교 등을 포함한 다름이 부각되는 이른바 ‘차이의 부상’을 이해하고 다루는데 한국 사회가 얼마나 미숙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런 반응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불안, 미래에 대한 막막함의 원인을 소수자에게 투사한다는 측면에서 특히 위험하다. 손희정 연구원은 “과거 존재했던 소위 빨갱이 혐오가 점차 힘을 잃고 종전선언 국면에 다가가면서 한국 사회가 (비난할) 다른 소수자, 새로운 타자를 찾아가는 식”이라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삶이 나아지지 않은 이유를 ‘내 것을 빼앗는 소수자’에게 돌리고 싶은 심리”라고 풀이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다른 정체성을 보이면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제거하고 싶은 대상으로 보는 혐오는 지극히 식민주의적 감정”이라고 보탰다.
◇ 슬프고 분노하고 억울했다
분석 대상 텍스트에서 사용된 감정어 빈도는 혐오가 75%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고통이 12%로 뒤를 이었다. 또 분노 7%, 공포 5%, 억울함 1%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위터를 제외한 분석 대상 텍스트에서 각 감정어가 사용된 비율이다. 이를테면 ‘혐오’의 구체적 감정어로는 혐오, 극혐이, 고통의 구체적 감정어로는 고통, 괴로움, 우울함, 힘듦, 슬픔 등이 분석에 포함됐다. 트위터는 리트윗(retweetㆍ재전송) 이용자의 의도가 최초 게시자의 감정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해당 분석에서 제외했다.
이나영 교수는 “사회적 타살도 모자라 혐오로 인해 실존적 타살까지 당해야 하는 상황이 약자에게 고통, 슬픔, 공포를 안겨주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이런 집합적 슬픔은 결국 구조적 문제에 집중하게 될수록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또 다른 분노의 배경으로는 누적된 피로감, 스트레스 등이, 공포와 억울함의 다른 배경으로는 각각 ‘자신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이 지목됐다.
신광영 교수는 “인권이나 다양성 수준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낯선 존재에 대해 일종의 공포 반응이 나오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라며 “특히 대상이 약자, 소수자일 경우 반발이나 저항으로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 두려움, 공포를 쉽게 공공연히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억울함은 ‘자기가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왜 외국인, 난민에게 무언가를 제공을 하느냐, 왜 북한에게 주느냐는 차원”으로 “상대적으로 박탈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 상태만으로도 억울한데 다른 소수에게 뭔가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퍼주기’라 느끼고, 억울함을 갖고 있다”고 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서들이 방치되면서 혐오 배양에 최적화한 조건이 계속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마치 곰팡이가 피는데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존재하듯, 혐오가 나타나는 조건과 여력이 충분한 게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며 “바로 이 근본 조건을 어떻게 줄여 나갈지를 고민하는 게 숙제”라고 힘줘 말했다. 각종 박탈감, 불평등, 차별 등 혐오와 차별이 싹트는 근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 일자리 문제, 복지 문제 등 그 무엇이든 시민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목이 무엇인지 파고들어야 한다”라며 “이를 테면 군복무 문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다면 복무 기간을 줄이거나 이 여건을 개선하는 것, 일자리에 대한 박탈감이 표출한다면 이를 직시하는 것 등이 근원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나 국회가 이 같은 혐오를 지나치게 방치하고 방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점차 다양해지는 시민들의 욕구와 소외, 배제에 대한 불안,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정당 정치의 장 안에서 적절하게 대변되지 못하는 가운데 여러 갈등이 심각하게 곪고 방치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사회 갈등과 혐오 문제에 보다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 [파편사회에서 공감사회로] 글 싣는 순서
<1>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2>혐오와 차별의 난장
<3>방관이 갈등 키웠다
<4>시작된 상생 실험
<5>화해는 이해로부터
<6>배려와 연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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