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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이해관계를 대변 못하는 거대양당이 사회 갈등 키워”

입력
2019.01.02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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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 <1>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가진 사람은 대변해 주는데 난 배제돼…” 혐오 밑바탕에 깔려 

 폐쇄적인 정치구조 개혁 통해 다양한 목소리 듣도록 만들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국가 기관 전반에 대한 신뢰, 나아가 민주주의 작동에 대한 만족감 차이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국가 기관 전반에 대한 신뢰, 나아가 민주주의 작동에 대한 만족감 차이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계층은 이미 부모의 계층에 의해 결정되고 이미 벌어진 격차와 불평등은 계속 심화하는 상황에서 각종 사회 갈등이 건강하게 풀려나가기란 쉽지 않죠.”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심화하는 우리사회 갈등과 증폭되는 혐오의 원인으로 ‘격차’를 지목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환경이나 끊어진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란 진단이다. 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분노와 우울감의 바탕에는 ‘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이 자리한다. 파편사회를 심화시키는 책임이 정치권에 적지 않다는 견해이다.

강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이 계속되는데도 개선의 기미가 없다는 것, 즉 ‘내가 적절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라거나 ‘내가 부자가 될 기회가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되면 이는 정당 정치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는 나아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분풀이, 약자에 대한 혐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격차’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부상하는 것이 비단 한국적 상황만은 아니다. 그는 “전 세계적 저성장 시대,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불가피함, 보편적 특성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국의 경우, 앞서 이념, 지역, 노사 갈등이 제대로 풀려나가지 못했는데 거기에 세대, 계층, 젠더 갈등이 중첩돼 어느 한 구석 문제가 풀려나간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극한 피로감의 상태가 됐다”고 평가했다.

“많은 시민들이 ‘나는 열심히 일했고, 노력했는데 여기에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여기에 취업비리. 고용비리. 불공정한 형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거봐’하며 좌절이 심화되지 않겠어요? 불공정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분노가 계속될 테죠. 결국엔 나보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약한 사회적 약자일 거고요.”

최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남성 20대 지지율 이탈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정부로서는 낮은 출산율이나 여성정책에 대한 고민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상황적 배경이 분명했는데도, 남성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고통받는 내게 받아야 할 혜택과 기회가 다른 곳으로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풀어나가긴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일자리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기회구조를 확 늘리기 어려운 만큼.”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은 오랫동안 정치가 쏟아지는 시민의 욕구와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 나를 대표해 줄 수 있는 정치적 주체, 혹은 나의 이익이나 상황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공식적 편이 없다는 것이 갈등과 분노, 혐오 감정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며 “다른 사람은, 혹은 가진 사람은 어떤 목소리로 대표되고 있는데 ‘난 가진 게 없고 난 배제되고 있다’는 생각이 일각에서 계속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지금의 두 거대정당은 정치적 목적을 이유로 1990년 3당 합당 이후 지역과 이념 갈등을 활용해왔어요. 그런데 이 위에 다시 계층 갈등이, 젠더 갈등이 올라타려 하고 있고. 정치권이 뭔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려면 기득권 강화를 위해 이 갈등을 계속 이용하기보다 해소하면서 대표성이 있게 상황을 풀어나가야죠. “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는 “폐쇄적이고 양극적인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갈등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반영되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이어 “정치적 대표성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조치가 지금 가장 절실한 상황”이라고 보탰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단지 경제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과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길"이라고 진단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단지 경제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과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길"이라고 진단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다행히 지난 2016~2017년 촛불집회 과정에서 청년세대가 얻은 정치적 효능감이 일말의 실마리가 되리라는 진단도 이어졌다. “당시 얻은 정치적 효능감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다고 봐요. 그러니 더더욱 청년들이 제도권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겠죠. 국회를 포함한 여러 제도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구조가 마련돼야 하는데 옛날식 공천방식만 고집하는 건 결국 청년들을 온라인 공간, 익명의 공간으로만 내모는 거죠.”

두 거대정당이 대다수 논의를 지배하는 폐쇄적 구조는 지역차원에서 조차 다양한 대표성의 발현을 가로막는다. 지역 시도 단위로 내려가도 두 거대정당 중 한 곳이 사실상 ‘일당 지배 체제’를 구축한 곳이 적지 않아서다. 강 교수는 “정치적 다원성이 확보되고 국회든 지방의회든 어느 레벨에서든지 다양한 형태의 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여지가 열려야 여러 갈등이 풀려 나갈 단초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지금은 승자독식 외에 정치가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더더욱 연동형 비례대표제 필요성 역설에 공을 들이는 겁니다. 한 정당이 과반을 얻기 어려운 구조여야 집권당이라도 아쉬운 소리를 하고 협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는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는 시민교육의 확대가 고민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교육과정에서 인성교육이나 공동체에 대한 고민, 더불어 사는 삶,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보다 많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는 난민 이슈를 예로 들어 “우리 사회의 제노포비아(xenophobiaㆍ이방인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 심할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라며 “서로 달라도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다고 하는 것들이 특히 교육을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미리 고민되고 학습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타인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사회적 분노나 울분이 늘 깔려 있기 때문에 어딘가 표출해야 하는 사회, 결국엔 이게 사회적 약자를 향해 표출되는 사회는 반드시 위기에 처합니다. 과거 비극을 겪은 많은 나라의 소위 ‘사고’들이 다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강력한 위험 신호입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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