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프로배구 신화 써가는 박철우
2005년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매 시즌 코트를 지켜왔던 박철우(33ㆍ삼성화재)는 매 경기 새로운 득점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 2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18~19 V리그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의 3라운드 경기에서 박철우는 팀의 3-0 셧아웃 승리를 이끌며 개인 통산 4,972득점에 성공, V리그 남자부 사상 첫 5,000득점 대기록을 코앞에 두게 됐다. V리그 14시즌 만에 세우는 대기록이다.
박철우는 꾸준함의 대명사다. 대한민국 배구 사상 첫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입단한 그는 공격 성공률이 50%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 시즌도 없다. 군 문제로 9경기만 뛴 2014~15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350점 안팎의 꾸준한 득점력을 보인다. 특히 2016~17시즌과 2017~18시즌은 각각 445득점, 586득점을 했고, 올해도 절반을 치른 3라운드 현재 293득점을 했다. 특히 서브 득점이 세트당 0.356개로 데뷔 이후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철우는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항상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면서 “은퇴하는 순간 최고 정점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2년 3,000득점 달성했을 때만 해도 ‘5,000득점은 언제 하지?’ ‘아직도 2,000득점을 더 해야 해?’ 이런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박철우는 첫 5,000득점이란 영예를 “’최초’라는 자극적인 의미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잘해왔다’고 주는 조용한 훈장이라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대기록의 공을 그와 함께한 동료와 감독들에게 돌렸다. 박철우는 김호철, 신치용, 임도헌, 신진식 등 역대 감독들을 열거하며 “감독님들이 출전 기회를 많이 주셨다”면서 “특히 세터 등 팀 동료들이 공을 많이 올려준 덕분”이라며 웃었다.
왼손잡이인 박철우는 특히 상대 왼쪽 공격수의 공격을 블로킹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이드 블로킹 능력은 리그 최고로 평가된다. 실제로 그의 통산 득점 가운데 블로킹 득점 비중이 10.8%(537점)로, 웬만한 전문 센터 블로커와 맞먹는다.
팬들에게 박철우는 언뜻 ‘오버맨’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코트에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넘치는 표현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대한항공 전에서는 팀 동료 타이스의 서브 득점 때 너무 좋아한 나머지 타이스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최근 V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로 꼽히는 정지석(23ㆍ대한항공) 역시,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파이팅 넘치는 박철우를 꼽는다. 주장이자 팀 내 최고참 선수로, 항상 큰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돋우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박철우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건 어렵고 부담스러운데, 요즘 ‘제일 잘나가는’ 선수가 이런 얘기 해 주니 정말 기분 좋고 고맙다”라며 웃었다.
‘2호 5,000득점’을 달성할 후배로는 통산 득점 2위(4,239점ㆍ26일 현재) 문성민(32)과 국가대표 레프트 전광인(27ㆍ2,977점), 그리고 차세대 에이스 정지석(23ㆍ1,482점)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정지석은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데다 재능이 출중해 나보다 더 많이 득점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박철우란 이름엔 유독 수식어가 많다. V리그 8연패를 이끈 ‘삼성 왕조’의 핵심 멤버이자 ‘연봉 3억원 시대’를 연 선봉장이다. 문성민, 김요한(33)과 함께 배구 황금 세대’를 이끌었고, 배구 명장 신치용 전 감독의 사위이기도 하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박철우는 “매 순간 불태우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선수는 경기장에서 뛸 때 가장 빛난다”면서 “최대한 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싶고, 은퇴 후에도 ‘코트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센터로 포지션 변경을 할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도 내놨다. 향후 나이가 들어 지금의 해결사 자리는 젊은 후배들에게 양보하더라도, 코트에 서 있을 수만 있다면 포지션에 상관없이 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최고 공격수 출신 선수가 상대적으로 빛나지 않는 센터 위치로 이직할 수 있다는 말은 쉽게 내놓기 어렵다. 박철우는 “후배들에게도 ‘내가 차세대 센터 꿈나무’라고 얘기한다”며 웃은 뒤 “기록에 상관없이 모든 경기가 소중하고 절실하다는 자세로 코트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용인=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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