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 최모(40)씨는 최근 운행을 하다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부쩍 늘었다. 운전에 집중할 수 없으니 승객 안전도 걱정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 승객이 다가와 “더워 죽겠으니 히터를 좀 끄라”고 운전석 보호막 옆 부분을 쾅쾅 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히터를 끄고 조금 있으니 이번엔 다른 승객이 “추우니 히터 좀 틀어라”고 외쳤다. 최씨의 하루 운행시간은 10시간 남짓. 최씨는 “12월 들어 유독 덥다, 춥다는 사람이 많아 운전하는 것보다 버스 실내온도 조절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객실에 난방이 가동되는 요즘, 예년보다 기온이 높아진 탓인지 승객들의 불만이 엇갈리면서 애먼 기사들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버스 승객들은 “기사가 승객 좌석 쪽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난방 조절을 한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반면, 기사들은 “승객 개개인의 체감온도가 다 다른데 어떻게 일일이 맞춰주냐”고 항변한다.
운수업계에 따르면 이런 ‘온도 전쟁’은 무더위보다 추위에 두드러진다.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을 각자 조절할 수 있는 여름철과 달리, 옷을 껴입는 겨울철에는 의자 밑에 달린 ‘히터 판’을 통해 일률적으로 난방이 이루어져서다. 최근에는 초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버스 안이 더워도 창문을 마음껏 열지 못해 답답함은 더욱 심해진다.
난방 민원이 이어져도 승객 좌석 위치와 옷차림,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체감온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기사든 업체든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렵다. 전철은 그나마 적정온도 기준(섭씨 24~26도)에 따라 온도 조절이 이뤄지고, 약냉ㆍ난방칸을 이용하면 되지만 버스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 기사의 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역버스운전기사 김모(52)씨는 “운전석에서 뒷자리까지 거리가 10m나 되는데 승객 45명이 각각 원하는 온도를 어떻게 일일이 맞추겠냐”라면서 “승객 입장에서는 단순한 불만 제기 한 건일 수 있어도 기사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겨울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운수업체 관계자는 “‘쾌적한 차내 환경을 조성해달라’라는 민원이 시를 통해 많이 들어오지만 온도 조절에 늘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겨울에 추운 것보단 오히려 더운 게 낫겠다는 생각에 가급적이면 따뜻하게 히터를 쭉 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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