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란 실없는 짓이다. 놀이 그 자체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행위다. ‘톰 소여의 모험’의 어린 톰 소여도 일찍이 일갈했다. ‘노동이 몸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놀이는 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그 실없는 놀이가 때론 큰 열매를 맺곤 한다. 어느 진화생물 학자는 인류가 돌을 던져 동물을 잡은 것보다 돌을 던지는 행위로부터 더 많은 것을 성취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던지는 동작을 통해 뇌를 활성화시켜 점차 언어 및 도구 사용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놀이 범주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포츠도 때론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놓는다. 올해만큼 스포츠의 힘을 제대로 실감했던 적이 있나 싶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송년모임에서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지며 남북 정상을 두 번이나 만나게 하고, 북미 정상 회담까지 이끌어냈다. 스포츠가 국가 운명을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스포츠와 평화의 인연은 고대 올림픽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만큼은 전쟁을 금지하고 적을 찌르던 창으로 멀리던지기를 겨루고, 생사를 건 육박전 대신 레슬링으로 승자를 가리자는 게 올림픽 정신이다. 고대 올림픽이 지닌 평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실현시킨 무대가 평창이 된 것이다.
스포츠는 남북 교류를 선도했고 다른 협의를 원만하게 이끄는 역할도 했다. 남북 당국자들이 만나 이야기를 풀어갈 때 단일팀의 성과 등은 초반의 어색함을 풀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서로의 닫힌 마음을 여는 가장 쉬운 방법이 스포츠다.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반목을 없애는 수단으로 이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남북이 가장 활발한 협력을 이루고 있는 스포츠는 더 큰 걸음을 내딛는다. 지난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이야기다. 평창만큼의 결실만 거둘 수 있다면 2032 하계올림픽 공동개최는 마다할 일이 아니다. 유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남과 북의 교류와 발전은 더욱 공고해지고 빨라질 것이다.
2032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에 더 관심이 많은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지난달 도 장관과 북한의 김일국 체육상에게 서한을 보내 남북이 사전 합의해 내년 2월 15일 스위스 로잔으로 공동개최 계획을 들고 와 발표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도쿄올림픽 위원장도 부를 테니 그 자리에서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남북 단일팀 문제도 함께 상의하자고 했단다. 유치를 희망하는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되레 IOC가 먼저 와서 설명하라고 적극성을 보이는 건 이례적이다.
사실 평창의 성과를 맛본 IOC 입장에선 한반도의 또 다른 올림픽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이다. 또 올림픽 유치에 이만한 명분도 없을 것이다. 바흐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출발점이었다면 2032 올림픽은 그 결실을 보여주는 종착점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도 전해왔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은 보통 7년 전에 결정되는데, 2032년 대회 개최지 선정은 2020년이나 2021년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 앞으로 1~3년 남북은 유치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쳐야 한다.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 외에도 세계적 관심을 끌 스포츠 메가 이벤트들을 남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개최지 선정에는 북한의 비핵화 진행 여부가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한의 전향적인 조치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다. 유치를 위해 남북이 긴밀히 협력하는 그 시간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킬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최근 피로감을 보이며 머뭇거리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스포츠가 또 다시 추진동력이 될 수 있다. 스포츠의 위대한 힘에 또 한번 기대를 걸어본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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