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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코리안 랩소디 2018

입력
2018.12.26 04:40
수정
2019.01.08 10: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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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람을 죽였어요. 적폐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탄핵의 방아쇠를 당겼어요. 냉전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요. 전직 대통령 둘은 지금 감옥에 있어요. 이제 그들은 정치적으로 사망했어요. 판문점 분계선도 사망했어요. 비무장지대 초소가 사망했어요. 핵실험도 군사훈련도 죽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엄마, 새 정권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아직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에요.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이에요. 힘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남자들은 여전히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어요. 재판을 거래한 법관들은 아직도 잘 살고 있어요. 회계를 조작한 재벌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어요. 국회는 오늘도 변함없이 세비만 축내고 있어요. 언론에서는 매일 한국경제가 망했대요.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자니까 벌써 나라가 망했대요. 강바닥에, 해외 깡통자원에 수십조 원을 갖다 버리고도 안 망했던 나라가 최저임금 조금 올렸다고 벌써 망했대요. 얼마 전까지 통일대박이라던 분들이 이제는 북한 퍼주기로 나라가 망한대요.

이건 현실인가요? 그저 환상일 뿐인가요? 산사태에 갇힌 듯 낡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진실을 보세요. 우린 그저 가련한 꼬마일 뿐이에요. 동정 따윈 필요 없어요. 정권이란 쉽게 왔다가 쉽게 지나갈 뿐이니까요. 다 거기서 거기인 셈이죠. 우리와는 정말 상관이 없어요. 어쨌든 바람은 불겠지요. 변화의 바람은 불겠지요. 평화의 바람은 불겠지요.

엄마, 태극기 어르신들을 울리려는 건 아니에요. 지난 시절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가시길 바래요. 너무 늦었어요, 모든 걸 돌이키기엔. 앙시앵 레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다시 돌아와서는 안 돼요. 우리의 새로운 시대가 왔어요. 우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해요. 등골이 오싹하고 온몸이 아플 만큼 두렵기도 해요. 안녕, 모두 안녕. 낡은 모든 것들이여 안녕.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요. 모든 걸 뒤로 하고 새로운 진실을 마주해야 해요. 엄마, 실패하고 싶진 않아요. 저항이 너무나 완강해서 가끔은 아예 이 길을 가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해요.

작은 그림자가 보이네요. 무능한 아마추어 같으니라고. 춤이라도 출래? 쇼만 하는 거야? 재벌과 언론이 아직도 너무나 무서워요. 간장게장, 간장게장, 간장게장, 간장게장, 간장게장, 종부세, 위대하여라! 금수저 물고 ‘갑질’하는 저들에 비하면 우린 그저 가련한 꼬마일 뿐이에요. 흙수저 집에서 태어난 불쌍한 아이일 뿐이에요. 오늘도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먼지 묻은 컵라면 하나 들고 죽음의 일터로 내몰리고 있어요. 이 끔찍한 ‘헬조선’에서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세요. 정권은 쉽게 왔다가 쉽게 갈 뿐이죠. 우리의 길을 가게 해 줄 건가요? 개혁과 혁신의 길을 가게 해 줄 건가요? 신의 이름을 걸고 안 돼, 절대 그 길을 가게 할 수 없어. 발목이라도 잡을 거야. 가게 해 주세요. 절대 그럴 순 없어. 우리의 발목을 그렇게까지 잡겠다니, 오호통재라! 제발 우리의 길을 가게 해 주세요. 악령이 우리 곁에 마귀를 붙여둔 게 분명해요. 우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래, 당신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사랑한다면서 촛불혁명의 유산을 죽게 내버려 둘 참인가요?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요?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당장 빠져나가야 합니다.

구체제의 억압! 나를 짓누르고 당신을 억눌러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일상을 불사르고 가족들을 갈라놓고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아요. 이 세상의 본질을,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이는 검은 손들을 알게 되면 끔찍할 거예요. 선한 이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뿐이죠. 광기는 억압 속에 비웃고 우리는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좁은 물에서 놀던 우리도 언젠가는 세계를 주름잡게 될 거예요. 그러다보면 얼굴에 흙먼지가 묻기도 하겠지요. 피가 좀 날 수도 있어요. 그게 뭐가 어때서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 낡은 세상 곳곳을 요란하게 일깨우고 우리의 깃발을 휘날립시다. 우리가 세상을 흔들어버릴 거예요. 거침없이 세상을 흔들어 버릴 거예요.

벗이여, 우리가 바로 챔피언입니다. 끝까지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적폐들에게 시간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200도의 뜨거운 열기로 하늘을 불살라요. 적폐를 불살라요. 냉전을 불살라요. 그렇게 새해에도 우리는 진짜 끝내주는 시간을 보낼 거예요. 세상은 뒤집어지고 한반도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황홀경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겠지요. 그러니 지금 우리 스스로를 멈추지 말아요. 제발 멈추지 말아요. 지금 앞길을 막지 말아요. 우리 미래를 막지 말아요. 우린 아주 좋은 시절, 환상적인 시절을 지내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새해에도 바람은 불겠지요. 희망의 바람이 불겠지요.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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