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 마녀사냥 극성
경제지표 왜곡해 경제위기 조장
협치 없이 경제심리 개선 불가능
경제학자 장하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위기는 단기간에 발생한 게 아니고 최저임금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다. 20년 넘게 누적돼 온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원인이다. 그럼에도 마치 소득주도 성장이 위기의 본질인양 공격해대는 마녀사냥이 극성이다. 정파성에 따라 경제 현상을 재단하는 잘못된 풍토가 만연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 위기의 진짜 주범은 갈등의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골목길 바닥에 널려 있는 대부업체 대출 전단. /박서강기자

3년 전 이맘때,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와 대량 실업이 몰려오는 국가 비상사태’라며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경제 관련 법안 직권상정을 압박했다. 정 의장은 “지금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보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며칠 후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상향 조정해 정부ㆍ여당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다. 박근혜 정부를 앞선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1%, 올해 2.7%(한은 전망치).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재정건전성도 양호하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소득주도 성장으로 나라가 거덜난 것처럼 위기론을 조장한다. 취업자 증가 폭 감소 등 일부 나빠진 지표만 강조하니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비판이 실감나게 들린다.

경제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경제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정파성에 따라 경제지표를 취사선택해 경제 상황을 왜곡하는 경우가 흔한 탓이다. 예컨대 참여정부는 성장률, 고용률 등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5년 내내 ‘경제파탄’ ‘경제실정’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등의 악의적 표현을 써가며 공격했다. 진보층의 편향성도 오십보 백보다. 박근혜 정부 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층에선 경기가 좋아졌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진보층은 대부분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최근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공화당원의 67%가 1년 전보다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원 중 긍정적 응답은 17%에 그쳤다.

대개 기득권층은 위기론을 반긴다. 정부가 규제를 풀고 건설경기를 띄우는 등 가진 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경제 위기를 자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근혜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라며 위기를 부풀린 데는 노림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당시 경제 상황을 위기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지표는 양호했어도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불평등 확대로 국민 삶은 피폐해졌다. 현 경제지표도 국민 삶과 유리되긴 마찬가지다. 반도체 수출이 아무리 잘돼도 내수 진작과 가계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초과세수로 나라 곳간은 괜찮지만 가계 지갑은 얇아지고 빚은 늘어만 간다.

문재인 정부로선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라는 보수언론의 공세가 못마땅할 게다.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위험도 크다. 하지만 국민 삶이 힘겨운데 굳이 위기가 아니라고 버틸 이유도 없다. 외환위기 이후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아닌 때가 있었나. 지금의 경제 위기는 소득주도 성장 탓도 아니다. 국가 부도 이후 20년 넘게 누적돼 온 주력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근본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 차를 맞는다. 기술 혁신이 초래한 기존 산업의 몰락으로 민생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내년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경제활력 제고’를 제시한 배경이다. 내년에 성과를 내려면 투자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투자란 미래 수익을 겨냥한 위험 부담 행위다. 경제 심리가 불안하고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투자가 이뤄질 리 없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 위기의 본질은 정치의 위기인 셈이다. 갈등 구도를 협치로 바꿔 경제 심리를 개선하지 않는 한 성과를 내긴 어렵다.

보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춰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 택시 등 사양산업 종사자를 보호하지 않고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재정 역량을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투입하는데 동의하기 바란다. 진보도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본질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대타협을 통해 위기 해결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으는 게 관건이다. 경제 심리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아무리 ‘속도와 성과’를 외쳐봤자 백년하청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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