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7일차, 턱이 V라인이 되었다고 응원 온 이들이 부러워한다. 6일차에 5kg이 빠졌으니 영혼이든 어디든 군살이 빠지긴 했겠지. 옆에 앉은 파인텍 차광호씨 얼굴을 보니 살점 훑고 난 닭뼈처럼 많이 야위었다. 그는 무기한단식 16일차다. 2015년에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 408일을 했던 이다. 어제 그가 세운 야만의 408일 기록이 동료인 홍기탁, 박준호에 의해 깨졌다. 이런 야만과 치욕의 기록 갱신을 막기 위해 지난 18일에는 사회각계 원로 150여 분이 비상시국선언에 나섰다.
긴박한 서한이 대통령과 국회, 노동부장관과 국가인권위원장에게 전달되었다. 19일에는 시민사회단체 총의를 모아 전격적으로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님, 그리고 내가 무기한 연대단식에 돌입했다. 20일에는 그간 십수년 눈물의 고공농성을 했던 노동자들이 나서서 408일이 되는 12월 24일까지 문제 해결이 안될 시, 모두가 12월 29일 전국집중규탄대회에 나설 것을 요청해 둔 상태다. 21일에는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22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수진 최고위원과 을지로위원회 전현직 위원장 박홍근, 우원식 의원이 단식장과 굴뚝 현장을 찾아 국회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약속했다. 408일이 되던 어제는 2018년 12월 24일을 ‘한국사회 노동인권 치욕의 날’로 선포하는 성탄전야 연대규탄문화제가 열렸다. 오늘 오후 2시에는 긴급 건강검진과 위로와 연대를 위한 굴뚝방문 성탄기도회가 열린다.
이렇게 한국사회 전체가 극한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이 모든 문제의 당사자인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도피성 외유나 일삼고 있다. 그는 2010년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한국은행으로부터 경북 구미에 위치한 (구)한국합섬을 평가금액 870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99억에 인수했다. 5년 여 동안 빈 공장을 지키고 있던 (구)한국합섬 조합원 104명에 대한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파기하고 1년 8개월 만에 위장폐업, 기계설비과 토지분할 매각이라는 먹튀에 나섰다. 대부분이 강제희망퇴직 당했지만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키라며 저항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지금 남은 다섯 명이다. 2015년 408일에 이르는 굴뚝고공농성 끝에 파인텍이라는 자회사로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 약속을 다시 받고 내려왔지만, 파인텍은 이들을 고립·고사 시키기 위한 강제수용소, 격리소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약속을 지키라는 싸움이 오늘로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굴뚝 위 농성 409일과 무기한단식 16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수백 억대 자산가다. 충북 음성의 공장은 신규사원 모집을 하며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다섯 명의 고용을 보장하지 못할 어떤 까닭도 없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 한 사람의 안락과 갑질, 무한이윤을 위해 이토록 많은 공적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왜 한국사회인 모두가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 재갱신이라는 모욕을 뒤집어써야 할까.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정죄되어야 한다. 반사회적, 반인륜적 기업가들에 대한 더 엄중한 법제도가 세워져야 한다. 노동존중을 이야기했던 대통령과 정부, 국회가 시급히 나서야 한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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