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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사색] 기이한 ‘적폐협치’

입력
2018.12.2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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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정부, 그동안 시대과제인 협치 외면 

 제 밥그릇 문제되자 뒤늦게 적폐협치 

 선거개혁, 적폐협치 통한 개악이 걱정 

당선 직후부터 여러 글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해온 것이 있다. 그것은 협치다. 과거청산과 개혁이 최우선 과제이지만 이는 당연히 하거나 하는 시늉이라도 낼 것이기 때문이다. 협치가 개혁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여럿이다. 누가 집권하든, 이제 ‘승자독식의 정치’, 이로 인한 ‘사생결단의 정치’를 넘어서 다양한 세력이 함께 협의해 나가는 협의민주주의, 합의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촛불혁명’을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촛불의 주역인 이름없는 수많은 시민들은 논외로 하자. 조연에 불과했던 정치권만 보더라도, 촛불혁명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만이 아니라 고 노회찬 전 의원 등 정의당, 바른미래당, 평화정의당, 나아가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까지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이들의 촛불협치에 기초해야 맞다. 마지막으로, 국회의 구성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과반수 의석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따라서 협치에 의하지 않고는 개혁입법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동안 이 시대적 과제를 외면했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또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청와대에 불러 만나는 등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를 협치로 보긴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대 국민정치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높은 지지율에 기대서 사실상 독주함으로써 협치와 여의도정치에 있어서는 거의 낙제점이라 하겠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집값 폭등과 민생침체, 게다가 집값 상승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수석의 오만한 발언과 청와대의 잇단 사고 등으로 대 국민정치에서도 문제가 생겨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동안 협치를 외면하던 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뒤늦게 협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그 협치가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이한 ‘적폐협치’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촛불과정에서 박근혜 게이트로 상징되는 고장난 대의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회의석수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여 대선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정의당,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 등 군소정당들이 이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입법화를 요구하며 예산안 심의를 거부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고 협치를 해 예산안을 사실상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다른 곳도 아니고 북한에 가서 집권을 하면 남북 간에 교류를 절단 낼 것이기 때문에 절대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대상이 바로 자유한국당이다. 따라서 이 대표가 보기에 명백한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과 협치를 했으니 ‘적폐협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같은 적폐협치는 문 대통령이 마음이 변해 대선공약을 던져버렸기 때문인가? 설마 그러기야 하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이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당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정당민주화의 숭고한 소명의식에서 문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여의도 쿠데타’, ‘이·홍 쿠테타’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정당민주투사’ 이해찬, 홍영표 만만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농성을 하는 등 군소정당과 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정치권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보여주었듯이, 거대 양당이 언제 다시 한번 적폐협치를 가동해 선거개혁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른다. 지난 총선 때도 선관위가 비례대표 확대 등 개혁을 요구했지만 두 당은 야합해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개악을 했다. 그 때 민주당대표는 문 대통령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개악을 걱정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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