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입력
2018.12.22 04:40
27면
0 0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연말 분위기의 절정은 역시 성탄절이다. 친구끼리 모여 파티도 열고 선물도 주고받는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열린다. 영국왕립연구소(RI)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강연이다. 과학을 주제로 재미있게 진행되는 대중강연인데, 극장식 강연으로 진행된다. 저명한 과학자가 과학 이야기도 들려주고 직접 실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학강연의 역사를 살펴보면,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청소년과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처음 시작됐다.

영국인들은 과학강연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열린 것이 1825년이니 거의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 강연을 만든 사람은 전자기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다. 무엇보다 강연을 만든 이유가 특별하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게 전통이었는데, 당시에는 양초나 케이크를 주로 선물했다고 한다. 패러데이는 이런 선물보다 더 의미 있고 멋진 선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일생 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과학강연을 열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 강연이 시작됐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패러데이는 정식 교육이라고는 초등 과정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자기장, 전자기, 전기분해 법칙 등에 관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을 하며 자수성가했던 과학자라 어린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물질적 지원보다는 과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천문학, 식물학, 화학 등 기초과학을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우주 탐험, 동물 행동, 로봇, 뇌 과학 등 점점 다양한 주제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왕립연구소는 매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하나 정하고 그 분야 최고 석학을 강연자로 선정한다. 그해의 강연 주제가 뭔지, 강연자가 누구인지는 영국 사회에서 큰 관심사라고 한다. 연말에는 공영방송 BBC에서 특집방송을 하고 있어 과학 애호가에게는 성탄절의 특별한 선물이 되고 있다.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77년에 행성을 주제로 강연했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91년에 강연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8년 올해의 강연자는 생물학자, 인류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앨리스 로버츠 교수와 유전학 전문가 아이프 맥라이재트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과 유전자가 99.9%가 동일하지만 각자 100% 특별하고 남다른 존재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흥미로운 강연이 진행된다. 이런 것이 영국 과학문화의 저력이다. 과학강연의 전통은 오늘날 피피티를 쓰지 않고 3분간 과학을 주제로 대중과 소통하는 페임랩 대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념비적인 1825년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강연은 패러데이의 제자 존 밀링톤의 자연철학 강연이었다. 사이언스라는 용어조차 없었던 당시에는 자연철학이 곧 과학이었다. 패러데이 자신은 1827년에 첫 강연을 했고, 일생 동안 19번이나 강연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860년 마지막 강연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양초는 주위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태워 빛을 냅니다. 여러분도 양초처럼 이웃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 주위 환경과도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청소년을 위한 과학강연을 선물로 마련한 취지를 잘 설명한 대목이다.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양초도 좋은 선물이겠지만 어린 시절 멋진 과학강연을 듣고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