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세자르 히달고 ‘정보의 진화’
요것 참 오묘한 책이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인 저자 세자르 히달고는 복잡계 물리학자다. 후기에 스스로 밝혔듯 원래 출발점은 저자가 자신의 첫 책 주제를 경제로 잡았다는 것이다. 수요ㆍ공급ㆍ균형 세 단어만 반복하는 기존 경제학 이론이 기괴해 보여서다. 그러다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동아시아)을 읽게 됐다. 자신의 주장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줄 도구, 정보이론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길은 좀 다르다. 글릭은 정보이론으로 온갖 곳을 종횡무진하다 “우주는 해명됐으나 우리는 유령이 됐다”는 소설가 보르헤스의 표현을 빌어온다. “정보는 넘치지만 무의미한 세상이 됐다”는 지극히 인문학적인, 디지털 묵시론으로 정보이론을 끝내버린 셈이다. 방대한 서술에 비해 허탈한 느낌이다. 반면, 저자는 경제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애초 목표에 맞춰 정보이론으로 본 장기 경제성장 문제를 다룬다. 서술에 박진감이 넘친다.
신문과 방송 같은 걸 보면 해외에서 휘황찬란한 학위를 받은 전문가라는 이들이 마치 자신의 손아귀에 엄청난 해결의 묘수가 있는 양 장황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만, 실제론 똑 떨어지게 합의된 정답이 없어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파고들면 들수록 ‘늪’이라 부르는 주제가 바로 경제성장이다. 이 문제로 도전하려니 당연히 ‘사이먼 쿠츠네츠 – 바실리 레온티에프 - 로버트 솔로 – 폴 로머’로 이어지는, 경제성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급 경제학자들의 논의까지 자신의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이 정도라면 ‘통섭’ 같은 표현은, 이 책에 부족함이 없다. ‘통섭’의 저자식 표현은, ‘원자에서 유기체까지’ 다룬 정보이론을 ‘개별 유기체에서 사회ㆍ경제로까지’ 확장했다는 것이다. 서술의 박진감은 이런 패기에서 나온다.
소소하게 오묘한 것들도 있다. 가령 저자는 칠레 출신이다. 칠레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여서일까. 이런저런 사례 설명에 한국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우리 얘기가 나오니까 읽으면서 괜히 저자와 예전부터 친했던 느낌이 든다. 또 하나는 저자의 필력이다. 정보이론에서 가장 헷갈리는 부분은 ‘정보’와 ‘의미’는 별개라는 점이다. 가치, 의미를 담고 있는 추상적인 무엇을 정보라 부르는 일상 용법과 다르다. 정보이론에서 정보는 ‘의미가 텅 비어 있는, 구체적 물리적 실체’를 뜻한다. 눈치챘겠지만 바로 ‘비트’다. 저자는 갖가지 기발한 비유를 통해 정보이론을 설명해나가는데 유용하면서 꽤나 웃긴다. 책 전반부는 정보이론에 대한, 이제껏 본 해설 가운데 최고의 해설이다.
이 모든 오묘한 것들을 넘어 이 책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은, 결국 경제성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가, 다시 말해 경험적 증거와 얼마나 일치하는 설명을 내놓는가이다.
일단 저자가 설정한 분석 단위는 퍼슨바이트(Person-byte), 펌바이트(Firm-byte)다. 한 개인, 한 회사가 품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의 규모를 뜻한다. 용어부터 물리학과 정보이론 냄새가 풀풀 난다. 퍼슨바이트, 펌바이트의 각 단위 능력을 키우는 것은 네트워크의 크기다. 확장되는 크기에 맞춰 각 퍼슨바이트와 펌바이트는 보다 세부적인 역량에 집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네트워크는 한층 더 확장되는, 선순환에 접어든다. 네트워크 확장이 성공적이기 위한 핵심 요인은 평등과 신뢰다. 평등과 신뢰가 있어야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고 교류한다. 경제성장은 이런 네트워크의 고도화, 곧 경제복잡성의 증대다.
저자는 실제 계산 결과를 선보인다. <그림1>은 1985년 기준 세계각국의 경제복잡성과 1인당 GDP관계를 나타낸다. <그림2>는 <그림1>이 보여주는 1985년 기준 경제복잡성과 1인당 GDP간 격차로 추론한 경제성장률을 1985년~2000년 사이의 실제 성장률과 비교한 표다. 성장률 산출을 1985~2000년 장기간으로 잡은 건 단기 성장률은 “주기적 경제위기, 물가, 환율 변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두 표를 비교해보면 경제복잡성은 높으나 1인당 GDP가 낮은 국가들, 그러니까 <그림1>의 대각선 아래 있는 국가들이 <그림 2>에서 대각선 위에 위치하고 있음을, 그러니까 장기적으로 예상되는 성장 이상의 고도 성장을 이뤄냈음을 보여준다. 구체적 나라 이름들을 찾아보면 중국, 인도는 물론, 한국(그림1ㆍ2의 ‘Kor’) 또한 그 대표적인 국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네트워크의 고도화, 곧 평등과 신뢰를 불어넣을 것이냐가 경제 성장의 관건이 된다. 시장주의자들은 오직 하나, ‘가격’으로 설명하려 들지만 저자가 보기엔 가격은 물론, 그 이외 사회적 자본이 고려돼야 한다. “경제는 경제 이전에 태어난 사회적 관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평등을 지향하고 신뢰가 갖춰져 있는가, 되물어야 한다. 정보이론을 다루는 복잡계 물리학자답게 저자는 이 사회적 자본의 문제를 ‘온도’라 부른다. 경제성장 문제를 다루려면, 경제학의 가격 뿐 아니라 사회적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온도는 그 본질상 선과 악이 있다기보다 우리에게 적당한 수준만 있을 뿐이다. 경제성장은 흑과 백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와 수준의 문제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보의 진화
세자르 히달고 지음ㆍ박병철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264쪽ㆍ1만6,000원
때마침 “산업정책이 없다”는 말이 유행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주장이다. 알려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은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모두를 비판하는 의미로 썼다. 이걸 엄청난 사회적 온도의 변화이어야만 하는 것으로 포장하려는 이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경제와 복잡계, 그리고 정보이론의 만남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꼭 챙겨볼 만한 책이다.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 기다려진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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