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전 한국 작가가 쓴 단편소설에 세계는 주목했다. 언어는 영어였지만, 토속적인 정취와 특유의 정서는 분명 한국의 것이었다. 김용익(1920~1995) 작가의 소설은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 유럽, 심지어 인도까지 세계 곳곳에 소개되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미국과 덴마크 등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영화 드라마 발레 연극 등으로도 제작됐다. 인간과 삶의 본질을 다룬 작품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세계인에게 깊은 영감을 남겼다.
김용익의 소설들이 새롭게 묶여 나왔다. 소설집은 그의 대표적인 단편작을 모은 것으로 1권 ‘꽃신’, 2권 ‘푸른 씨앗’으로 구성된다. ‘꽃신’은 미국 플로리다 서던대학과 켄터키대학 등에서 공부한 그가 1956년 미국 잡지 하퍼스 바자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영문 소설 ‘더 웨딩 슈즈’로 발표한 작품은 7년 후인 1963년 한국어로 번역돼 ‘꽃신’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주인공 상도는 이웃집 꽃신장이의 딸에게 청혼했다가 백정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큰 상처를 입은 상도는 부산으로 떠났고, 이후 한국전쟁이 터진다. 성인이 된 그는 어느 날 시장에서 결혼을 반대했던 꽃신장이와 재회했다. 늙고 초라해진 꽃신장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꽃신을 우직하게 팔고 있었다.
김용익 소설집 1·2
김용익 지음
남해의봄날 발행·188쪽·160쪽·1만3,000원
소설집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 상황이지만, 전란의 상처를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꽃신’ 속 상도는 초췌해진 꽃신장이를 보며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언청이인 몽치는 연인 앞에 얼굴을 내보이기 두려워 미제 타이어를 훔치고(‘겨울의 사랑’), 아홉 살 천복이는 파란 눈 때문에 놀림을 받아 학교를 결석한다(‘푸른 씨앗’). 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헤치고 끈기 있는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깔끔하고 미려한 문장도 돋보인다. ‘돈주머니를 다 털어 버리고 싶지만 결혼 신발이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꽃신’), ‘봄이 오면 그 여자는 아름다운 것을’(‘겨울의 사랑’). 허풍 떠는 미군 병사를 맹아원 아이들이 ‘클라운(광대)이 아닌 ‘크라운’(왕관)이라 부르는 장면(‘서커스타운에서 온 병정’)에서는 언어유희를 통해 슬픔을 극대화시키는 작가의 표현력이 돋보인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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