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시기에 동시개봉 제살깎기
‘보랩’ ‘완벽한 타인’ 비수기에 흥행
연말 관객 맞이로 활기가 돌아야 할 겨울 극장가에 근심이 짙게 드리워 있다. 영화 ‘마약왕’과 ‘아쿠아맨’ ‘스윙키즈’가 19일 동시 개봉해 스크린 대전에 불을 붙였지만 어느 영화도 활활 타오르지 못했다. 이날 ‘마약왕’은 25만116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아쿠아맨’은 14만5,415명, ‘스윙키즈’는 10만2,498명을 불러모았다. 개봉일치고는 부진한 성적표다. 추석 연휴 이후 오랜만에 나온 대작 영화이고 화제성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실망스럽다.
먼저 승기를 잡은 ‘마약왕’조차 웃지 못하고 있다. 배우 송강호와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이 쌍두마차를 이뤘지만, 관객 평가가 매우 저조하다. CGV 회원들의 평가로 매겨지는 골든에그지수가 불과 76%다. ‘아쿠아맨’(93%)과 ‘스윙키즈’(94%)에 한참 뒤진다. 극장 관계자들은 “이런 분위기가 주말까지 이어진다면 ‘보헤미안 랩소디’가 신작들을 제치고 다시 박스오피스 3위권 안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음에도 이날 하루 동안 4만3,581명을 동원했다.
25일에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프리퀄 ‘범블비’가 개봉하고, 26일에는 배우 하정우가 제작과 주연을 겸한 ‘PMC: 더 벙커’가 관객을 만난다. 스크린수와 좌석수는 한정돼 있는데 대작 영화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극장가는 그야말로 대혼돈이다. 과당 경쟁으로 공멸을 자초했던 추석 극장가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시성’과 ‘명당’ ‘협상’ ‘물괴’ 등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한꺼번에 쏠린 추석 극장가는 승자 없이 ‘나눠 먹기’로 끝나고 말았다. 저마다 적게는 100억원, 많게는 200억원 이상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단 한 편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겨울 영화 ‘마약왕’과 ‘스윙키즈’ ‘PMC: 더 벙커’의 제작비도 150억원을 웃돈다.
한국 영화계가 개봉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름과 겨울, 설 연휴, 추석 연휴 등 특정 시기에 편중된 배급 방식에서 벗어나 비수기 잠재 관객을 끌어내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월 극장가를 점령한 ‘보헤미안 랩소디’와 ‘완벽한 타인’은 비수기 시장성을 입증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810만 관객을 돌파했고, ‘완벽한 타인’은 520만 깜짝 흥행을 일궜다. 두 영화의 쌍끌이 흥행 덕분에 11월 전체 관객 수는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0.3%(399만명) 증가했고 매출액도 39.5%(410억원) 늘었다. 11월 관객수와 매출액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한 중견 제작자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완벽한 타인’은 비수기도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며 “한국 영화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배급 전략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사실상 비수기가 거의 없었다. 10월에는 ‘베놈’이 388만명, ‘암수살인’이 376만명을 불러모으며 극장가를 달궜고, 추석 연휴 직전 9월에는 ‘서치’가 294만명을 동원하며 화제를 뿌렸다. 3월 개봉해 관객 수 267만명을 기록한 ‘곤지암’도 효자 상품이었다. 이승원 CGV 마케팅 담당은 “성수기에는 대작 영화가 여러 편 나와도 시장 규모가 커지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비수기는 어떤 영화가 개봉하느냐에 따라 큰 폭의 변동을 보인다”며 “관객이 요구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비수기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