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기술 대학에 제공 새제품 개발 후 거래관계 중단
특허청이 납품 중소기업의 기술 아이디어를 탈취한 것으로 드러난 현대자동차에 시정권고 조치를 내렸다.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아이디어 탈취 금지 조항이 추가돼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후 첫 사례이다.
특허청은 20일 미생물을 이용한 악취제거 전문업체 ㈜비제이씨의 미생물 관련 아이디어를 탈취한 ㈜현대자동차에게 부정경쟁방지법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해를 배상하고, 비제이씨의 미생물제와 실험결과를 도용하여 개발한 미생물제의 생산ㆍ사용중지 및 폐기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비제이씨의 미생물제 및 악취저감 실험 결과를 동의없이 경북대에 전달하여 새로운 미생물제를 개발하게 하고 이를 현대차ㆍ경북대 공동특허로 등록한 행위와 개발된 새로운 미생물제를 도장 부스에서 사용하는 행위가 아이디어 탈취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허청은 악취저감 실험에 사용된 비제이씨의 미생물제는 이 회사가 현대차 공장에 적합하도록 맞춤형으로 주문해 제조된 제품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과는 미생물 구성 및 용도가 다르다고 밝혔다. 또 비제이씨가 이들 제품을 다시 희석해 배양하고 현대차 도장공장 순환수 환경에서의 적합성 실험을 거친 후 현대차에 공급한 것이어서, 비제이씨의 악취저감 경험과 노하우가 집적된 결과물이라고 판단했다.
비제이씨는 실험을 통해 현대차 도장공장의 악취원인이 휘발성 유기화합물(VOC)만 있지 않고 다른 원인물질도 있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현대차는 이 실험결과를 동의도 받지 않고 경북대에 넘김으로써 현대차와 경북대는 악취의 원인을 찾는데 들여야 할 시간과 비용,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고 특허청은 설명했다.
또 경북대가 개발한 미생물제에는 현대차가 무단으로 넘긴 비제이씨의 미생물 5종이 포함되어 있고, 연구보고서에는 비제이씨 미생물 중 분해성능이 좋은 미생물을 추가하여 미생물제를 제조하겠다는 내용도 있어 경북대가 비제이씨의 미생물을 이용하여 제품을 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새 미생물제 개발에 따라 2004년부터 비제이씨와 맺어왔던 거래를 2015년 5월에 중단했으며, 비제이씨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그 동안 납품하던 화학제품 계약도 지난해 6월 중단했다.
특허청은 이번 사건이 개정 부정경쟁방지법 시행 이 후 기술ㆍ아이디어 탈취에 대해 특허청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결론내린 첫번째 시정권고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기술ㆍ아이디어 탈취 관행에 경종을 울려 유사사례 재발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법에 기술ㆍ아이디어 탈취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권고에 그칠 수 밖에 없는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기술탈취로 인한 피해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거쳐야 한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더욱 전문성을 발휘해 기술ㆍ아이디어 탈취에 대해 법집행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허택회 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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