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감독 성공비결 열정과 인간미
무리뉴 강성 리더십은 불화 빚어
최용수(47) FC서울 감독은 한때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서울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곧바로 K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던 2012년 일이다. 당시 축하 행사가 많아 노래를 자주 불러야 했는데 ‘우승은 아무나 하나~’로 가사를 바꿔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201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5년 FA컵 우승 등 ‘서울 전성시대’를 열었던 그는 2016년 여름, 중국 프로축구 장쑤로 이적했다.
최 감독이 떠난 후 조금씩 내리막을 걷던 서울은 올 시즌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사령탑이 두 명이나 중도 사임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내 하위권을 맴돌다가 사상 처음 하위스플릿(7~12위)으로 떨어졌다. 구단은 급기야 지난 10월 최용수 감독에게 SOS를 쳤다. 그는 지난 해 6월, 장쑤 감독에서 물러나 방송 해설 등을 하며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최 감독이 2년 4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서울의 위기는 계속됐다. 최 감독 복귀 후에도 1승2무3패에 그치며 부산 아이파크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벼랑 끝 상황까지 몰렸다. 2부 추락의 위기에서 간신히 잔류에 성공해 한숨 돌린 최 감독을 19일 경기 구리 GS 챔피언스파크 훈련장에서 만났다.
그는 “2012년에 ‘우승은 아무나 하나~’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 뒤 우승까지 3년(2015년 FA컵)이나 걸렸다.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며 “그런데 이번에 복귀해서 하위스플릿 팀들과 경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상대를 얕잡아 보고 있더라.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완벽하게 준비가 안 되면 승점은 거저 가져올 수 없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최 감독은 요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박항서(59) 베트남 감독을 보면서 느낀 게 많다고 했다. 박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 코치일 때 최 감독이 선수였다. 둘은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는 격 없는 사이다.
최 감독은 “박 감독님의 성공 비결은 축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인간미”라며 “얼마 전 박 감독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한 번 만났다. 달랑 배낭 하나 메고 소탈하게 혼자 다니시더라.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모습이 와 닿았다”고 밝혔다. 이어 “박 감독님이 우리 지도자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하나 있다. 군림하는 리더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상 선수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양보하고 직접 선수 발을 마사지해준 박 감독의 이른바 ‘파파 리더십’을 의미한 말이다.
최 감독도 이런 리더십의 효과를 올 시즌 몸소 경험했다. 그가 팀에 들어와 보니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경기력은 바닥이었다. 벤치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평소 ‘한 성격’하는 최 감독이라 더 참기 힘들었을 텐데 치솟는 화를 꾹 눌러 담았다. 오히려 선수들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리고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했다. 승강 PO로 떨어진 뒤에도 그는 “내가 부족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선수들을 감쌌다.
최 감독은 “선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얼마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물러난 ‘명장’ 조제 무리뉴(55) 감독을 언급했다. 대표적인 강성 지도자인 무리뉴 감독은 주축 선수 폴 포그바(25)와 불화를 빚은 끝에 경질됐다.
서울이 올 시즌 부진에 빠지자 인기도 뚝 떨어졌다. 11월 11일 전남과 홈 경기 관중은 7,000명이 조금 넘었다. 최 감독은 “7,000명 앞에서 홈 경기할 줄은 몰랐다. 정말 자존심 상하고 팬들에게 죄송하다. 나부터 반성할 테니 구단도 뼈를 깎는다는 심정이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작심한 듯 쓴 소리를 했다.
얼마 전 중국으로 떠난 최강희(59) 전 전북 감독과 최용수 감독은 과거에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은 전북의 독주 시대였다.
최 감독은 내년 시즌 다시 전북의 대항마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이를 위해 팀 재건 작업에 몰두하느라 휴식기에도 매일 클럽하우스로 출근하고 있다. 그는 “비 시즌 동안 알차게 선수 구성을 해 내년에는 다시 전북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구리=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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