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기업집단 공시이행 점검결과’ 발표
금호산업은 2016년 12월 6~7일 이틀에 걸쳐 금호고속에 각각 46억원씩 총 92억원을 빌려줬다. 2건 모두 대여조건(금리 3.7%)과 상환일(2017년4월)이 동일하고, 당시 금호산업이 400억원 이상의 여유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굳이 자금을 쪼개 대출해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금호그룹의 이 같은 ‘이상한’ 계열사간 거래가 공시의무를 회피할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와 50억원 이상(또는 자본금의 5% 이상) 거래할 때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공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쪼개기’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금호고속이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시의무를 회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집단 절반 이상이 계열사간 내부거래나 이사회 운영상황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다가 적발돼 수십 억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부거래 분야에서 위반행위가 다수 적발됐다. 공정위는 20일 이 같은 내용의 ‘2018년 대기업집단 공시이행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내부거래 숨기는 대기업
공정위는 올해 5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60곳(소속회사 2,083곳)을 대상으로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이사회 운영 등 기업집단현황 △채무보증 등 비상장사 중요사항 등을 법규에 맞게 공시했는지를 점검했다. 그 결과 60개 집단 중 35곳(58%) 139개사가 194건의 공시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들에게 약 23억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세부적으로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총 18건의 공시의무를 위반해 가장 많은 과태료(약 5억2,000만원)을 부과 받았다. 이어 OCI(18건ㆍ2억7,000만원) KCC(16건ㆍ4,800만원) 한국타이어(13건ㆍ2,700만원) 등의 순이었다.
특히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공시 위반이 91건에 달했다. 이중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회사(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 상장사 등)나 규제 ‘사각지대’ 회사(총수일가 지분율 20~30% 상장사 등)가 공시를 위반한 경우가 68건으로, 전체의 약 75%를 차지했다. 가령 부영그룹의 동광주택(사각지대)은 2015년 총수인 이중근 회장에게 약 51억원을 빌려줬으나,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 OCI그룹의 군장에너지 또한 계열사 에스엠지에너지(사각지대) 유상증자에 참여, 주식을 50억원 인수했으나 시장에 알리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의 몽클레르신세계는 지난해 4분기 신세계와의 상품용역 거래대금을 33억원으로 공시했으나, 실제 거래금액은 172억원으로 조사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회사에서 공시의무 면탈행위가 많이 나타나고 있어 집중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이사회 안건을 누락하거나 사외이사 참석자를 허위로 알리는 기업집단현황 공시위반이 94건, 유상증자나 채무보증 결정 등을 늑장 공시한 비상장사 중요사항 공시위반이 6건으로 집계됐다.
◇공시의무 피해 ‘꼼수’ 거래
이번 조사에서는 공시의무 및 시장감시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의 거래도 다수 적발됐다. 아시아나개발은 금호티앤아이에 2017년 6월 2일부터 13일까지 총 100억원을 공시기준금액(아시아나개발 자본금 5%인 18억2,200만원) 미만으로 쪼개 6회에 걸쳐 빌려줬다. 공정위 조사 결과, 6건 모두 대여조건(금리 4.6%)이 모두 동일했다. 게다가 당시 아시아나개발은 130억원 이상의 여유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쪼개기 거래는 향후 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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