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초판 3만부 발행… ‘박준 현상’은 진행형
반은 어슷하게 썰고 반은 채 친 겨울 무, 그리고 둘을 서로 다른 반찬인 양 따로 담아 상에 올려 보는 마음. 닭집 아이가 도시락 반찬으로 매일 싸 오는 닭고기, 그리고 그 아이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호숫가 민박집 주인이 며칠째 내온 민물고기 탕과 조림과 찜, 그리고 그걸 물리고 미안해진 마음.
박준(35) 시인의 새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엔 그런 것들이 있다. 도라지 무침, 된장 쑥국과 도다리 맑은 쑥국, 돼지볶음, 간장에 졸인 양지, 설익은 밥과 잘 익은 밥도 있다. 시를 읽어도 허기가 지지는 않는다. 음식을 쓴 게 실은 아니어서다. 박 시인은 음식에 담긴 마음들을 썼다. 그는 밥 한 끼 지어 먹이는 마음의 다정함을 깊이 안다.
독자들은 박 시인의 다정함에 매혹됐다. 2008년 데뷔하고 낸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문학동네)는 11만권,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2017∙난다)은 16만권 팔렸다. 다시 매혹되기를 뜨겁게 기다린 이들 덕에, 새 시집은 13일 나오자마자 인터넷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섰다. 출판사는 초판을 3만권이나 찍었다. 박 시인을 1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예뻐서요…” 그는 그 말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새 시집 화자도 착해요.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맵게 내오는 식당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돌려 말하는 사람이에요.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고요. 착한 시, 착한 시인이라는 말, 어떤가요.
“착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소극적’이라고 하면 몰라도요. 제 화법이 그래요. 의미가 고정된 말, 단번에 전달되는 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까 늘 걱정해요. 이를테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고백하는 말이에요. ‘함께 보고 싶다’는 말을 지연시켜서 하는 거예요. 상대도 같은 마음이면 ‘그래, 함께 보자’고 할 거고, 아니면 ‘나 장마 싫어’ 하겠죠. 비겁한가요? 시의 말하기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말하기라 믿어요.”
-시에 된소리, 거센소리, 외래어가 드물어요.
“시에 외래어를 쓰는 게 쉽지 않거든요. 제가 장악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서요. ‘그해 봄에’라는 시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는 연이 있는데, ‘치킨’으로 썼다가 ‘통닭’으로 바꿨어요(웃음). 요즘은 시를 묵독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소리로 존재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소리 내 읽으면서 조금 더 부드러운 말로 고쳐 써요. 발음해 보면 ‘연두’가 ‘녹색’보다 예쁘잖아요. 그런 거예요.”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시집 발문에 썼듯, 백석(1912~1996) 시인의 시를 닮았다는 평은 어때요.
“현대 시가 백석, 정지용, 김소월, 이용악, 임화, 윤동주 같은 1900년대 초반 시인들이 만든 미학 구조 안에 존재하면서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죠. 백석 시를 심취해 읽는 건 일부러 하지 않았어요. ‘백석 전집’도 읽지 않았고요. 너무 좋아하지만, 그 자장 안으로 빨려 가는 게 두려워서요. 시에 음식을 더 쓰고 싶은데 덜 쓰는 것도 백석 시에 음식이 많이 나와서예요. 어떤 오해를 당할까 봐요.”
-1983년생 시인의 시로는 ‘레트로’하다는 얘기는요. ‘눕고 싶은 데워진 구들'이 있고 '손님 따라 토종닭과 폐계를 가려 내는 닭집'이 있는 시예요.
“과거를 시에 많이 들이긴 해요. 그건 과거가 시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과거가 있기 때문이에요. 과거는 없는 것 같지만 있어요.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면 과거가 아니에요.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저는 안 달라진 것 같아요. 누가 보고 싶을 때 요즘은 편지를 쓰는 대신 화상 통화를 하죠. 화상 통화를 한다고 덜 보고 싶나요? 보고 싶어서 ‘무엇’을 하는지가 달라졌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달라진 게 없으니까 제 시는 레트로가 아닌 거예요.”
-참여하거나 비판하는 시는 거의 쓰지 않네요.
“제 안으로 들어온 무언가를 이렇게 저렇게 굴려 보다 ‘육화’돼 나가야 써지는 게 시예요. 그럴 수 있을 만큼 제가 현실에 참여하지 않아요. 분개하거나 슬퍼할 때가 있긴 한데, ‘시인’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죠. ‘나는 시인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발언하고 싶어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현실을 소재로 쓰지는 못하지만, 현실을 보는 것으로 저의 세계관을 바꿔 가고는 있어요.”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시 ‘생활과 예보’ 전문이에요. 이번에도 아버지가 자주 나오시네요.
“아버지는 평생 트럭 운전을 하셨어요. 아버지와 둘이 있을 때 시적인 상황이 자주 와요. 친구분들은 아버지를 ‘시인’이라고 부르세요. ‘비 온다니 꽃 지겠다’도 아버지가 진짜 하신 말씀이에요. 어머니는 달라요. 등단 전 시작 노트에 한 마디 써 달라고 했더니 돈 많이 벌라면서 은행 계좌 번호 적은 분이에요(웃음).”
-창비 출판사 편집자를 하면서 시를 쓰잖아요. 전업 시인을 꿈꾸진 않나요.
“전업 시인으로 살 수 있다 해도 그러면 안 돼요. 저는 삶의 장면들을 끊임 없이 봐야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에요. 시대와 동떨어진 채 보편의 지점을 찾아 낼 혜안이 없기도 하고요. 기자가 취재하듯 세상과 딱 붙어서, 제 시를 읽어 주는 분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해요.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이런 다짐은 이렇게 신문 지면에 남겨 놔야겠어요.”
-쑥스럽기도, 지겹기도 할 질문이겠지만, ‘박준의 시’는 왜 사랑받을까요. ‘스타 시인’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산에 빗대 보자면, 제 시는 오르기 쉬운 산이에요. 시의 의미가 험하지 않아요. 초입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고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긴 한데 금방 내려가야 하는 산은 또 아니에요. 더 올라가는 길도 나 있고, 올라가서 할 일도 있어요. 깊이 읽는 독자들은 자기만의 길을 만들 수도 있고요. 저는 시인 치고 스타인지는 몰라도, 스타 시인은 아니에요. 시인으로 사는 것과, 스타 시인으로 불리는 시인으로 사는 건 별로 다르지 않아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