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둘러싼 갈등엔 “자기 이익만 앞세우면 그 이익도 잃을 것”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이후 반도체 호황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3, 4년 후를 내다보면 걱정이 앞선다”며 “향후 성장동력을 찾는 문제는 더 이상 대처를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평소 신중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경기에 대한 견해를 밝혀온 이 총재의 행보에 비춰 매우 드문 직설적 경고다. 그는 또 선도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가 이해관계 갈등에 가로막혀 있다며 “각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장기적으로 그 이익도 지켜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 총재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경제정책 운영에 있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현안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중국 출장 중 방문한 ‘중국판 실리콘밸리’ 중관춘을 예로 들면서 “세계 도처에서 첨단기술산업 육성 경쟁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내부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며 “새로운 각오로 미래 성장동력과 선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날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해선 “이러한 문제의식과 대응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규제 완화를 둘러싼 이해상충을 비판한 것에 대해 “특정 부문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가장 두드러진 갈등 사례인 카풀제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그걸 보면서도 정말 결정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논란을 피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한걸음씩 차근차근히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소위 새로운 국제흐름에 뒤쳐지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금융불균형 완화를 앞세워 내린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대해 “사실 금융불균형을 축소한다는 것은 성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는 데 비해 금융비용 부담이 우선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통상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며 “하지만 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유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요조건”이라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통화정책은 긴 안목에서 우리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며 결정해야 하고 평가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올해 잦은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한은이 11번에 걸쳐 비상점검체제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상점검이)월례행사처럼 되다 보니 ‘비상’이라는 명칭이 좀 무색해졌다”는 농담과 함께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과 양호한 충격흡수력 덕분에 시장 전반이 불안해지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 경제 진로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대외 상황으로 △미국 금리인상 속도 조절 여부 △미중 무역분쟁 전개 양상을 꼽았다. 이 총재는 올해가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 3만달러를 넘어선 해이자 고령사회(전체 인구 대비 고령자 비율 14% 이상)로 진입한 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고령사회에서 어떻게 경제활력을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를 안겨준 한 해”라고 평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2월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꼽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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