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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문 대통령 평가

입력
2018.12.1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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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소셜리스트)인줄 알았는데 공산주의자(코뮤니스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최근 해외에서 기업설명회를 연 임원 A씨가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받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깜짝 놀란 A씨가 그 이유를 물었다. 오랫동안 한국 기업에 투자해 온 이 외국인은 가장 대표적인 예로 현 정부 출범 후 계속된 카드 수수료 인하를 들었다. 지난달 발표된 카드 수수료 개편안에 따르면 연 매출 5억~10억원 일반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내달 말 평균 2.05%에서 1.40%로 조정된다. 카드 업계에선 이번 수수로 인하로 총 1조4,000억원의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외국인 투자자는 통신료 인하와 대출ㆍ금리 규제 등도 또 다른 사례로 들었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개방 경제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에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시장 가격을 잘못 건드리면 더 큰 부작용이 따른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반값 우유 정책이 오히려 젖소 사육 감소로 이어져 우유 가격만 치솟게 한 게 유명한 예다. 분양가 규제가 로또 아파트 광풍을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영업자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카드 수수료를 낮춘 것에 대해서도 외국인 투자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너무 많은 게 문제이고 이는 전통 제조업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새로운 일터를 찾지 못하면서 궁여지책으로 개업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카드 수수료가 근본 원인이 아니란 얘기다. 일부 북유럽 국가처럼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경우에만 자영업 허가를 내주는 등 더 이상 자영업이 늘지 않게 관리해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정책을 내 놓은 셈이다. 더구나 카드 수수료 인하로 인한 카드업계의 인력 구조조정은 적잖은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 일각에선 그 규모를 1만명 수준까지 보고 있다. 한쪽만 본 외눈박이 정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보는 이유는 앞으로 이러한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가늠하기 힘들고 정책의 일관성도 안 보인다는 데 있다. 독과점이 횡행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금융은 어느 나라나 당국의 규제가 심할 부문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현 정부 금융 정책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게 외국인의 토로다.

결국 외국인은 한국 금융주를 내다 팔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10월 4조원의 상장 주식을 순매도한 데 이어 이달에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70%도 넘던 일부 시중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어느새 60%대로 주저 앉았다. 이미 주요 시중은행 주가 순자산 비율(PBR)은 모두 1배 아래이고, 0.5배 수준까지 추락한 곳까지 생겼다. 은행을 지금 당장 청산해도 주가의 2배는 받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나라 금융주가 외면받는 것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시중 은행 수익도 좋아질 것이란 예상보다 당국이 은행 수익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경제 정책이 시장에 좀 더 우호적인 쪽으로 선회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애로를 해소하기로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기업 투자 유도’의 성과를 위해 또 다른 방식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제발 좀 가만히 놔 두면 좋겠다”는 게 재계의 솔직한 심정이다. 2019년이 전환점이 돼 현 정부 후반기엔 문 대통령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이렇게 바뀌길 기대해 본다. “알고 보니 따뜻한 시장주의자였다.”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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