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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진 자리에 녹슨 철로와 정겨운 옛집

입력
2018.12.18 18: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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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5>삼척 도계의 낡고 빛바랜 풍경들

도계읍 흥전국민주택 단지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쇠락한 탄광촌에서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거주지다. 삼척=최흥수기자
도계읍 흥전국민주택 단지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쇠락한 탄광촌에서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거주지다. 삼척=최흥수기자

삼척은 바다다. 해상케이블카와 해양레일바이크, 수로부인헌화공원, 해신당공원 등 주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원덕, 근덕면 바닷가에 몰려 있다. 맹방, 임원, 장호 등 제법 알려진 관광지 역시 해변이다. 그러나 삼척의 본 모습은 산이다. 태백 통리에서 동해바다로 가는 길은 짧은 구간에서 해발고도 700m를 내리지른다. 38번 국도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면 브이(V)자 협곡 사이로 제법 규모를 갖춘 도시가 보이는데, 바로 도계다.

도계역 광장엔 보석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다. 낮에는 검지만 밤이면 알록달록 빛을 발한다. 도계가 어떤 곳인지, 아니 어떤 곳이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검은 황금을 캐내는 ‘까막동네’ 도계는 한때 태백 삼척 동해를 먹여 살리는 곳이었고, 탄광촌의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도시라고 자부했다. 전국의 중소도시가 쇠락해 가는 건 공통된 현상이지만 도계만큼 극적인 곳도 드물다. 도계의 황금기는 1970년대 말이었다. 1979년 도계읍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4만4,534명이었고 실제 거주자는 6만명에 달했다. 지난달 말 도계 인구는 1만1,568명으로 간신히 읍의 지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총 4,500억원을 투입했지만 옛 시절의 영광을 되찾기는 역부족이었다.

통리에서 동해로 가는 국도에서 본 도계 풍경. 험준한 협곡에 형성된 탄광촌이다.
통리에서 동해로 가는 국도에서 본 도계 풍경. 험준한 협곡에 형성된 탄광촌이다.
도계역 앞 조형물은 도계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듯 밤마다 알록달록 불을 밝힌다.
도계역 앞 조형물은 도계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듯 밤마다 알록달록 불을 밝힌다.
석공아가씨들의 아름다운 시절. 도계역에 전시된 ‘광산에 핀 꽃’ 사진이다.
석공아가씨들의 아름다운 시절. 도계역에 전시된 ‘광산에 핀 꽃’ 사진이다.

지난 7일 도계역 대합실에는 ‘광산에 핀 꽃’이라는 주제로 탄광촌 주민들의 자전적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1978년도인가, 사람이 얼마나 밀리는지 석공(대한석탄공사)에 3,500명이 있었어요. (그래도) 사람이 모자라니 전국에서 모집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사람을 보내곤 했습니다. 모집을 해 오면 한 명당 5만원을 주고 그랬지요.” 당시 대한석탄공사에서 관리자로 근무한 배형식씨의 회고다. 얼굴의 검정 칠만 겨우 닦아 내고 찍은 기념 사진엔 ‘석공아가씨로 불리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갱도 입구에서 ‘난닝구’ 바람으로 찍은 사진엔 ‘보리 까먹고 무밭 망가뜨리던 개구쟁이 유년 시절’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모두 ‘장화 없이 걸을 수 없는 길을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온 거친 숨소리와 같은 날들’에 대한 추억이다.

도계에는 광업회사 이름이 붙은 ○○사택과 행정 지명이 붙은 ○○국민주택, 대한석탄공사의 석공아파트 등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공동 주택이 산비탈 곳곳에 흩어져 있다. 모두 검은 황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을 위한 주거시설이다. 도계여자중학교 맞은편 공터에는 도계에서 유명한 ‘긴잎느티나무’ 한 그루가 넓은 공간을 홀로 차지하고 있다. 1,000년 넘는 나무가 30m 둘레에 가지를 드리워 인근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의 소풍과 기념사진 배경으로 빠지지 않았고, 주민들에게 언제나 넉넉한 쉼터였다. 거목 인근의 석공사택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따로 담장이 없고 네댓 가구가 한지붕 아래 일렬로 붙어 있는 길쭉한 형태다. 아직까지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외벽과 화단이 제법 깔끔하다.

도계역 앞 오십천 주변 주택. 사람이 몰려 택지가 부족하던 시절의 흔적이다.
도계역 앞 오십천 주변 주택. 사람이 몰려 택지가 부족하던 시절의 흔적이다.
도계여자중학교 맞은편 긴잎느티나무.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로 도계읍내에서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다.
도계여자중학교 맞은편 긴잎느티나무.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로 도계읍내에서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택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산자락 공동주택은 폐가가 많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택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산자락 공동주택은 폐가가 많다.

도계역에서 통리 방향 선로를 따라가다 왼편 산자락에 보이는 전두1리 마을도 비슷하다. 철길 건널목을 통과하면 낮은 축대 위에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1층짜리 주택이 산비탈을 따라 길쭉하게 이어져 있다. 2012년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장식한 담장 벽화는 또 그만큼 색이 바래 자극적이지 않다. 좁은 골목을 따라 마을을 둘러보면 시골 외갓집에 온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1940년에 건립한 마을 어귀 도계역 급수탑은 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전두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흥전국민주택은 도계의 전성기 주거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선로 옆 산자락에 40여년 전에 지은 90여채의 집들이 가지런하게 몰려 있다. 당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6~10채의 집을 한 블록으로 반듯반듯하게 묶었다. 다만 집과 집 사이 통로는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비 가림 시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좁다. 좋든 싫든 이웃 간에 흉허물을 터놓고 지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연스럽게 정이 오갔을 마을은 변함없지만 쇠락한 탄광촌의 그늘은 짙다. 광산으로 출퇴근하는 가족과 아이들로 북적거렸을 골목엔 사람 구경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 앞 유리 공예가들이 협동조합으로 전시 판매장인 ‘도계유리마을’마저 현재 내부 공사로 쉬고 있어 쓸쓸함이 더하다. 철길 옆 어느 집 담장에 그려 놓은 황금을 캐는 광부의 모습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마을은 앞뒤로 산이 막혀 도계에서도 유난히 해가 짧다. 집집마다 쟁여 놓은 연탄 더미가 그나마 겨울 바람의 스산함을 덜어 줄 뿐이다.

전두1리마을 급수탑. 1940년에 건립한 구조물로 현재 등록문화재다.
전두1리마을 급수탑. 1940년에 건립한 구조물로 현재 등록문화재다.
40년이 넘은 흥전국민주택단지. 겉모습은 깔끔하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선로처럼 쇠락해가고 있다.
40년이 넘은 흥전국민주택단지. 겉모습은 깔끔하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선로처럼 쇠락해가고 있다.
흥전국민주택의 벽화. 황금을 캐던 시절이 꿈처럼 느껴진다.
흥전국민주택의 벽화. 황금을 캐던 시절이 꿈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정도를 빼면 도계읍의 오래된 공동 주택은 현재 상당 수가 빈집이거나 폐허로 변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추진하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수준이다. 주민이 거주하는 일부 주택도 낡고 빛이 바래기는 마찬가지여서 차마 가보라고 권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인구 감소에 젊은층마저 떠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소도시의 미래를 미리 보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기숙사가 읍내에 있어 간간이 청년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도계역 풍경.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선에 각 9회 운행한다.
도계역 풍경.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선에 각 9회 운행한다.
도계에서 통리로 가는 도로변에 들어선 피노키오나라.
도계에서 통리로 가는 도로변에 들어선 피노키오나라.

◇삼척 도계 가는 길

●도계역에는 태백~강릉 구간을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가 상하행선에 각 9차례 정차한다. 그중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6회 운행하며, 약 4시간30분이 걸린다. 시외버스는 동해공용터미널과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자주 있는 편이다. 동해에서 1시간, 태백에서 20분이 걸린다. ●도계역 인근에 상설시장으로 전두시장이 있다. 장날(4ㆍ9일)이면 한산한 시장 골목이 그나마 생기를 찾는다. 지역 어르신 일자리 사업으로 운영하는 시장 안의 ‘따순밥’ 식당은 한식 뷔페를 판매한다. 1인 5,500원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다. ●도계읍내에서 통리 방향 국도변 산중턱에는 유리공예와 목공예 전시 체험장인 ‘도계유리나라’와 ‘피노키오나라’가 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각각 8,000원, 3,000원이다. ●도계에서 삼척 방향으로 약 23km 내려가면 대이리 동굴지대다. 모노레일을 타고 환선굴ㆍ대금굴을 관람할 수 있다. 동절기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이자,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준경묘도 그 부근이다.

삼척=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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