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건넸다는 개발 업자에 “별도 고소하라” 대응… 사건 묻혀
청와대 “검찰 조사 후 불입건” 이틀 만에 “규명 없었다” 거짓해명 논란
검찰은 17일 ‘우윤근 주 러시아 대사 1,000만원 인사 청탁’ 의혹과 관련해 2015년 한 부동산개발업체 대표가 검찰에 진정서를 냈지만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1,000만원 수령 부분을 조사했으나 불입건 처리했다”는 입장을 낸 청와대도 이날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뒤늦게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이 당시 유력 국회의원에 대한 의혹을 알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배경, 금품수수 의혹의 실체 등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검찰은 이날 2014년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에서 부동산개발업체 대표 장모씨가 조모(58)변호사를 상대로 낸 사기혐의 고소사건을 2015년 3월말 불기소 처분했고, 사건을 종결한 직후 장씨 측으로부터 우 대사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한 진정서를 받았다(본보 17일자 1면)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우 대사 의혹을 수사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이미 고소사건을 불기소 처분했고, 우 대사 관련 내용은 고소사건과 무관하기 때문에 수사를 원하면 별도의 고소장을 제출하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씨는 당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 대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입건조차 되지 않은 채 지난 4년 동안 사건이 묻히게 됐다.
뒷짐을 진 당시 검찰의 자세가 절차상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유력 정치인에 대한 범죄 의혹을 인지하고도 절차를 이유로 내사 등 사전 조사조차 하지 않은 데 뒷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직접 진정을 내 수사가 크게 까다로울 게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거액의 고소ㆍ고발 사건을 다루는 조사부 특성이나 별건 수사 시비를 감안할 때 의도를 깔고 사건을 뭉갠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건이 종결된 이후 진정을 한다고 무조건 그 사건을 맡는다면 청부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당시 여야 관계나 청와대 민정을 감안할 때 검찰이 야당 정치인을 봐 줄 이유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진정 절차를 밟아 접수된 우 대사 의혹이 실체 규명 없이 묻힌 점에서 검찰이 정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의혹이 다시 고소ㆍ고발 된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소멸됐을 개연성이 높다. 뇌물ㆍ정치자금법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7년으로, 돈이 건넨 시점은 9년 전이다.
지난 14일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의 감찰보고서 폭로로 우 대사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뒤 청와대 대응은 거짓 해명 논란도 빚고 있다. 청와대는 폭로 다음날인 15일 “당시 검찰도 저축은행 사건 및 1,000만원 수령 부분을 조사했지만 모두 불입건 처리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진작에 해소된 의혹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검찰이나 두 차례 본보 보도내용 등을 통해 사실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사안임에도 부실한 확인작업 내지 의도된 거짓 해명으로 사안을 호도한 셈이어서 청와대가 오만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17일 절차 미비를 이유로 검찰의 정식 수사가 없었다는 본보 보도와 관련해 ‘우 대사 의혹이 규명된 게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엄밀히 얘기하면 (규명되지 않은 게) 맞다”고 입장을 바꿨다. 우 대사 역시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가 야당 원내대표로 있던 시절 검찰에서 다 불러서 조사하고, 나는 부를 필요도 없다며 종결한 사안”이라며 검찰 입장과 다른 해명을 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수사관 폭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 없이 대응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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