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 보류될 듯 
 민생 집중 이유라지만 ‘소통 증진’ 필요 
 당장 힘들면 광화문 작은 집무실이라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장소로 거론됐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왼쪽). 청와대가 최근 민생ㆍ경제 챙기기에 집중할 때라는 이유로 집무실 이전 공약 보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 1호’로 꼽았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불발되는 모양이다. 청와대가 최근 외부 자문그룹 논의에서 이 계획을 보류하는 쪽으로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한다. 국민을 상대로 변변한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슬그머니 공약을 접어도 되는 건지 씁쓸하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포기의 가장 큰 이유는 최근의 정책 성과 부진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보다 경제ㆍ민생 챙기기에 집중할 때라는 것이다. 고용을 포함한 모든 민생지표가 추락한 현 시점에서 집무실 이전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전 공간 확보와 경호ㆍ경비 등 실무적 난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이해한다 해도 이대로 접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의 취지가 ‘국민과의 소통 증진’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해 대선 전후로 문 대통령은 “불의와 불통의 시대를 끝내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던 문 대통령이 지금 ‘소통 부족’으로 국정 운영에 난맥상을 빚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전 대통령들이 겪었던 ‘실패의 길’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하나같이 소통을 강조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를 닫기까지는 동일한 패턴이 있다.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된 집권 초 개혁 성과가 나고 국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면 능력을 과신하며 우쭐해진다.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 행정력만으로는 안 되는 시기가 오고, 국회라는 벽에 부닥치면 이내 무력감에 빠진다. 청와대 참모와 내각, 여당의 ‘무능’과 ‘방조’에 실망하게 되고,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주변 인물들을 만나기 싫어지고 자연히 국민들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5년 단임제’의 숙명처럼 되풀이되는 이런 과정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청와대의 지리적 위치다. ‘구중궁궐’이나 다름없는 북악산 기슭에 자리한 청와대는 소통에 최악의 장소다. 일제 때 조선총독이 식민 통치를 위해 경복궁 뒤편에 관저를 만들었던 것을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로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통치의 대상’인 국민과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려는 의도적 장치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대로변에 위치해 접근성을 높인 미국의 백악관이나 영국 독일 일본의 총리 집무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겸손과 배려, ‘낮은 자세’가 정치적 자산인 문 대통령도 단임제의 법칙과 청와대라는 공간적 단절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취임 초에 보여줬던 언론ㆍ시민들과의 직접 접촉은 많이 줄었고, 대신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 주를 이룬다. 국외 순방 중 전용기 기자간담회에서의 질문 제한은 지지층에게조차 실망을 안겼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문 대통령의 ‘혼밥’ ‘혼술’ 소문은 위험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모든 부분에 ‘리셋’이 필요한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국면 전환이 시급하다. 방법의 하나로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고려할 만하다. 공간의 미학과 지리적 위치가 인간의 사고를 바꾸고 행동 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도 있듯이 일하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면 탁 트인 공간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광장에 나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생생한 민심을 들을 수 있다. 그가 말했듯이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장 상인들과 함께 소주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지금보다 더 시민의 편에 선 정책이 나오리라고 본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 당장 어렵다면 광화문에 별도의 작은 집무실이라도 마련했으면 한다. 일단 간이 집무실부터 두고 이전에 필요한 다른 문제는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이는 꼭 문 대통령만을 위한 게 아니라 앞으로 똑같은 고민에 부닥칠 차기 대통령들을 돕는 길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시민들과 물리적 거리부터 좁혀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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