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의 경남제약 상장폐지 결정으로 비슷한 처지의 거래정지 상장사 주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명도 있는 중견기업이 뜻밖의 증시 퇴출 결정을 받으면서 자신이 투자한 기업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높아진 탓이다. 특히 경남제약처럼 분식회계로 인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의 경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거래정지가 이뤄지는 탓에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
17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거래가 정지된 채 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심사를 받고 있거나 개선기간을 부여 받은 상장사는 모두 30개사(경남제약 포함)다. 이 가운데 회계처리기준 위반, 즉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는 상장사는 코스닥 3곳(경남제약, UCI, 마제스타)과 코스피 2곳(참엔지니어링, 대호에이엘) 등 총 5곳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자기자본 또는 매출채권ㆍ무형자산ㆍ매도가능증권 등 자산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거래소는 금융당국의 분식회계 판정에 따라 거래정지 조치를 취한 기업에 대해 기심위의 상장폐지 심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회부 기업에 대해선 상장폐지 또는 유지 결정을 내리거나 개선기간(최대 1년)을 준 뒤 재심사를 한다.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기업들은 이 기간 중 회계장부를 바로잡고 자본확충 등 거래 재개 승인을 받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분식회계 혐의가 있는 경우엔 통상 금융당국이 비공개로 감리를 진행한 뒤 조치 결과만 발표하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을 맞기 쉽다. 특히 정보에 취약한 소액주주들이 갑작스러운 거래정지 및 상장폐지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예컨대 철도 부품을 생산하는 대호에이엘의 경우 올해 상반기 ‘남북경협주’로 꼽히며 지난해 말 1,160원이던 주가가 6월1일 장중 8.980원까지 올랐고 8월 하순에도 6,000원대의 고공행진을 했다. 그 와중에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회사 전체 지분의 3%에 달하는 83만주를 사들이며 주가를 떠받쳤다. 9월5일 금융당국의 검찰 고발 조치와 거래소의 주식거래 중지로 보유 주식을 처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 회사 주주들은 모임을 꾸려 피해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마제스타 주주들은 거래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한 개인투자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거래정지나 상장폐지 대상이 되면 투자자들은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 당한다”며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더구나 거래소가 최종적으로 상장폐지를 결정할 경우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는 7거래일 간의 정리매매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시장에서 거래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가 주가 변동폭도 제한되지 않아 폭락된 가격에 주식을 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올해 10월 4일까지 상장폐지 된 31개 종목의 주가는 정리매매 기간 동안 평균 90.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폐지 판정을 받은 기업 상당수는 마지막 자구책으로 폐지 결정의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한다. 실제 코스닥 상장기업인 에프티이엔이, 파티게임즈, 감마누는 가처분신청 인용을 받아 정리매매 기간을 늦춘 상황이다. 하지만 거래소가 상장폐지 결정 과정에서 이의제기, 개선기간 등의 적법 절차를 밟는 터라 본안 소송에서 결정이 뒤집어지기는 쉽지 않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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