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건물 좀 그만 지어라.” 건축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얘기다. 높다랗게 쌓아 올려 위압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하늘을 향해 굳건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영웅, 민족의 조각, 동상 같은 걸 경멸해서다. 좌우나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 떠나 겸손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영원불멸’이란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염치 없는 짓이란 깨달음 덕이다. 경북 구미시에 황금색 칠을 한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을 때, 그게 김일성 동상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조롱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 독일 베를린 심장부의 메모리얼 파크 같은 게 좋은 건축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치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곳이라면 유대인이 당한 아픔과 고통 영원히 잊지 말자는 기념비적인 건축이 들어설 법도 하다. 하나 그 대신 사람보다 조금 더 큰 높이와 덩치를 지닌 직사각형 돌덩이들을 세웠다. 그 사이엔 중심부로 기울어져 있는 길이 나 있다. 아우슈비츠 너를 결단코 잊지 않으리라, 거창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절멸이란 이렇게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경험임을 알려 준다. 기념비에 대비되는 ‘휴먼 스케일’이다.
□ 메모리얼 파크엔 비밀이 하나 있다. 인근 숲을 가 보면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돌덩이 하나가 있다. 이게 뭘까, 다가서면 그 돌덩이 안 영상물이 자동 재생된다. 군용 점퍼에 군화를 신은 스킨헤드 남자가 병약해 보이는 유대인 남자와 키스한다. 나치의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유대인에게만 쏠린 게 아닐까, 동성애 같은 소수자들을 재조명해야 하는 게 아닐까, 같은 고민이 반영됐다. 성 소수자 등 지금 시대의 소수자 역시 일종의 아우슈비츠 아닌가라는 질문이 담겼다. 메모리얼 파크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했다.
□ 유사 역사의 문제는 여기서 나온다. 독일은 저렇게 반성하는데 일본은 그러지 않는다로 시작해 우리가 저런 놈들에게 이렇게 쉽사리 당할 민족이 아니었다는 레퍼토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하늘의 뜻, 광활한 영토, 이어져 내려오는 혈통, 위대한 역사, 명징한 예언을 그렇게나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유사 역사가 바로 독일과 일본의 침략논리, 바로 기념비의 논리였다는 점은 쉽게 잊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우리 역사가 사실은 이랬다는 기념비적 주장이 그렇게나 환호를 받을 때면, 그 열등감이 애닳고 슬프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