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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되는 ‘알파걸’ 자원… 한국 고학력여성 노동시장서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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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되는 ‘알파걸’ 자원… 한국 고학력여성 노동시장서 소외

입력
2018.12.17 04:40
수정
2018.12.17 11: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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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분석 “OECD 국가 중 우리만 역행”

신임 검사들이 2013년 2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임관한 50명의 신임 검사 중 여성이 32명으로 전체의 64%를 차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임 검사들이 2013년 2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임관한 50명의 신임 검사 중 여성이 32명으로 전체의 64%를 차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리천장 깨기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공부에 매달린다. 학벌, 점수 같은 객관적 요소가 차별의 방패막이가 돼 줄 거라 기대해서다. 어머니들은 “나처럼 살지 말라”며 딸 교육에 헌신하고, 딸들은 당차고 똑똑한 ‘알파걸’로 자란다. 그들은 각종 고시를 휩쓴다. 남녀 대학 진학률도 역전됐다. ‘배운 여성들의 시대’가 온 걸까.

현실은 거꾸로다. 한국 노동시장은 전문대학 이상을 졸업한 고학력 여성들에게 더 가혹하다. 고학력 여성일수록 일자리를 찾는 것도, 지키는 것도 어렵다. 고학력 전업주부의 상당수는 ‘밀려난 여성’이다. 대전세종연구원 여성∙아동 정책 담당 최성은(37) 연구위원은 17일 출간된 저서 ‘일할 수 없는 여자들’(북저널리즘)에서 고학력 여성들이 도태되는 구조적 이유를 추적했다.

노동 용어 ‘비활동’은 고용되지 않았거나 일자리를 찾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남녀 비활동 격차’는 여성의 비활동률에서 남성의 비활동률을 뺀 값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많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간한 ‘한 눈에 보는 교육’에 실린 2017년 가입국 노동시장 조사에 따르면, 남녀 비활동 격차는 학력이 높을수록 줄었다. 학력이 양질의 일자리로 연결되는 ‘학력 프리미엄’을 여성들이 누린 덕분이다. 35개 가입국 중 유일한 예외는 한국이었다. 고학력일수록 남녀 비활동 격차가 컸다.

왜일까. 최 연구위원은 기업이 여성을 인적 자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출산, 양육으로 사직할 가능성이 큰 여성을 기업은 핵심 인재로 키우지 않는다. 교육 비용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정부가 나설수록 여성이 소외되는 역설도 생긴다. 고용 보호 정책이 강력할수록 기업은 노동력을 붙잡아 두려고 투자를 늘린다. 인력 이탈의 손실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여성을 아예 뽑지 않으려 한다. 스웨덴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좋은 기업 일자리는 남성들이 차지했고, 여성들은 공공서비스 부문에 몰렸다. 그나마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스웨덴의 직종별 임금 격차는 크지 않다.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의 저자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박사 과정 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그를 사람들은 “독하다”고 했다. “독한 사람이어서 해낸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버텼을 뿐이다.”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의 저자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 박사 과정 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그를 사람들은 “독하다”고 했다. “독한 사람이어서 해낸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버텼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은 여성을 소수만 뽑아 대학졸업자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 숙련 노동에 주로 투입한다. 일반 숙련 노동자는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임금도 상대적으로 적다. 여성들은 딜레마를 만난다. 우선 전문 숙련 노동에 시간, 비용을 들일 유인이 크지 않다. 경력 단절 위험 때문이다. 출산, 육아를 마치고 재취업될 확률을 높이려면 ‘평범한 노동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 조직의 핵심 인재가 되는 야망을 품기엔 육아, 가사를 맡길 외주 시장이 작다.미래를 포기하는 고학력 여성이 늘고, 다시 외주 시장이 커지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류의 모성 신화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정부는 일자리의 질보다 양을 따지기 마련이어서, 고학력 여성 일자리 문제는 사각지대다.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제 일자리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지금처럼 2급 일자리로 취급되는 한 성취를 바라는 고학력 여성들에게 출구가 될 수 없다.

결국 ‘진짜 알파걸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최 연구위원은 16일 전화통화에서 “알파걸은 많이 나오지만, 알파걸 자원이 낭비되고 마는 게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이라며 “여성이 특정 전문직에 몰리는 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성평등한 일자리가 그 만큼 적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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