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주말 KBS 라디오에 출연해 “경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기 살리기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며 “기업 기 살리기는 필요하지만 재벌ㆍ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면 과거 회귀인 만큼, 중견ㆍ중소기업이 그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김 위원장의 발언은 공정위원장으로서 기업 기 살리기를 빌미로 ‘재벌 개혁’에서 후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경제’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재벌 개혁을 늦출 타이밍이 아닐지 모른다. 재벌 오너 일가의 불합리한 기업 지배와 사익 추구, 협력 중견ㆍ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구조 같은 ‘기업적폐’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원장으로서 기업 기 살리기가 재벌ㆍ대기업에 섣불리 ‘면죄부’를 주려거나 주는 것처럼 비치고 기업적폐를 온존시키는 쪽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것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인식에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까지 기업 투자활성화 방안을 고민할 정도로 기업의 국내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 7월 삼성전자 인도 휴대폰 공장 준공부터 최근 SK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투자 확대 방침에 이르기까지 대기업들의 생산기반 해외 이전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시장확대 필요성(77%)을 내세우지만, 내심 고임금과 노동경직성(21%) 등 국내 투자여건 악화도 기업 생산기반 해외 이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적대시 분위기도 문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최근 우리 경제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재벌을 무조건 적으로 여기는 식으로 가면 경제가 살아날 길이 없다”며 재벌에 대한 현 정권의 전략 수정을 촉구한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 기 살리기는 재벌개혁의 반동도 아니고, 특혜를 주자는 얘기도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고 투자의욕을 격려하는 산업정책과 규제완화가 절실하다는 요구다. 여기에 대고 굳이 재벌ㆍ대기업은 기업 기 살리기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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