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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제는 민생과 개혁이다

입력
2018.12.1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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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늘어지며 민생ㆍ개혁 과제 지연

치밀한 계획 없이 몰락한 과거 경험 비춰

협치와 청와대 개편으로 3년 차 대비해야

[1213중소기업방문18]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경남 창원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를 마친 후 가정용 전기기기 제조업체인 삼천산업을 방문해 최원석 대표에게 제품 설명을 듣고 사용해보고 있다. 창원=청와대사진기자단
[1213중소기업방문18]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경남 창원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를 마친 후 가정용 전기기기 제조업체인 삼천산업을 방문해 최원석 대표에게 제품 설명을 듣고 사용해보고 있다. 창원=청와대사진기자단

올 초에 만난 문재인 대통령 측근 인사는 문재인 정부를 대략 3기로 구분하는 국정운영 로드맵을 설명했다. 촛불 혁명의 시대적 과제인 적폐청산을 6ㆍ13 지방선거까지 마무리하고 2020년 4월 총선까지 집권 2기에는 각종 개혁 작업을 제도화ㆍ안정화하는 데 역점을 둔다는 것이었다. 실제 청와대는 6월 지방선거 직후 문재인 정부 2기를 선언하고 민생과 혁신의 성과를 다짐했다.

지방선거를 치른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떤가. 집권 3년 차 진입이 코앞인데도 개혁의 제도화는 고사하고 집권 1기와 달라졌다는 분위기조차 느낄 수 없다. 아직도 요란하게 울리는 적폐청산의 북소리 때문이다. 양승태 사법부를 단죄하기 위한 사법농단 수사가 종착역도 없이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민간인 사찰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사망 사건까지 발생해 ‘청산 피로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직권남용죄가 공직사회의 적폐를 도려내는 전가의 보도로 인식되면서 관가에는 복지부동이 번진다고 한다.

대통령 측근이 그린 로드맵에 따르면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와 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새로운 출발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팀 일부를 바꾸는 데 그쳤다. 도리어 9월 당정청 전원회의를 소집해서는 느닷없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주문하며 구시대 청산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적폐청산을 법과 제도의 시스템에 맡기고 민생과 개혁 과제로 국면을 전환하는 시기를 놓쳤다. 당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월간지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에 치중하느라 민생 문제를 소홀했다. 중요한 개혁일수록 광범한 사회적 동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산 중심의 개혁은 개혁 그 자체를 어렵게 한다”고 따끔히 지적했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민생과 개혁은 뒷전으로 밀렸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나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권력기관 개혁이나 비례ㆍ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 등의 정치분야 개혁은 여의도 정치에 발목이 잡힌 지 오래다. 노동ㆍ복지 분야의 각종 개혁 또한 첨예한 이해 충돌 속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겨냥했던 ‘소득주도 성장’은 목표를 잃고 표류 중이다. 새로 출범한 2기 경제팀이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속도 조절을 시사하고 있지만 주력 산업의 기반이 무너져 내린 구조적 위기의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난망하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에 적나라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민생이 걱정이다.

최근에야 여권에서도 지체된 개혁과 민생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거론되는 모양이다. 여당의 정책브레인으로 통하는 정치인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적폐청산은 이제 끝났고 한반도 평화 이슈에 경제ㆍ민생을 접목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그의 지적대로 문 대통령의 시원시원한 청산 행보와 탁현민식 이미지 정치로 국민적 환호를 이끌어 내던 시대는 지났다. 한반도 평화 이슈에 기댄 고공 지지율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보름 남짓이면 문재인 정부가 3년 차에 접어든다. 여권 핵심에서 그린 시간표와 달리 6개월가량 지체되면서 개혁을 제도화시키고 정책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촉박한 일정 속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할 수 있다. 기대에 못 미친 개혁 드라이브로 집권 2년 차에 지지율이 빠지고 3년 차에는 각종 스캔들로 반환점을 돌자마자 정권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게 역대 정권의 전철이다.

더구나 개혁과 민생은 국회의 입법과 정교한 정책이 필수인 만큼 치밀한 계획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문재인 정부 1기에서는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일종의 자의적 통치체제’라는 ‘청와대 정부’가 통했을지 몰라도 2기에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야당을 상대로 개혁입법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 내는 협치가 아니면 안 된다. ‘자기 정치’에 몰두하는 청와대 참모진으로 안정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지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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