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헌옷수거함. 국민권익위 제공

갑작스러운 한파가 닥친 6일 늦은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 해진 가죽점퍼 남성의 손과 머리가 초록색 통에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헌옷수거함이라고 적힌 통을 벗어난 남성의 얼굴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그러더니 손끝에 딸려 나온 구부러진 철사엔 겨울 옷들이 걸려 있었다. ‘임무’ 완수한 남성은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요즘에도 겨울에 옷이 없어 헌옷을 탐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엄동설한에 빵만큼 귀한 외투를 훔치는 ‘헌옷 장발장’들이 적지 않다. 관계 기관과 복지단체들이 앞다퉈 집도 절도 없는 노숙인의 방한용 의류를 챙겨 주는 시대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 소외된 이웃들은 지원받는 방법을 모른다는 방증이다. 혹한이 밀려오면 임시방편으로 헌옷수거함을 탐하는 노숙인들도 있다. 야음을 틈타 은밀하게 한두 벌 훔쳐가는 일은 표도 나지 않아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문제는 돈벌이 목적으로 가져가는 경우다. 최근 전북 정읍시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헌옷수거함을 돌며 의류 500㎏을 훔친 50대 남성이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버린 옷인 줄 알고 고물상에 내다 팔려고 했다”는 이유를 댔다. 대구 주택가에선 파지를 주워 생활하던 60대와 70대 노인이 수거함에서 옷을 훔쳐 팔아 생활비에 보태려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박구원 기자

헌옷수거함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비영리단체 또는 개인이 설치하면서 널리 퍼졌지만 지금은 사업 수단이 된 탓이다. 헌옷수거함 대부분은 개인사업자가 개당 15만원 상당에 구매해 관리되고 있다. 이렇게 수거된 의류는 국내에서 다시 판매되거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된다. 분해 후 기름걸레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런 사정이라 당장의 추위를 피하기 위한 장발장 행각도 절도가 되는 셈이다. 실제 2016년 몽골 유학생들이 헌옷수거함에서 바지 등 옷 세 벌을 꺼내 입었다가 절도죄로 입건됐다. 영하 6도까지 떨어진 강추위에, 수거함 근처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함 안에 있는 옷도 쓰레기라고 생각했다는 점 등이 참작됐지만 3명이 함께 행동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 혐의가 적용됐다. 헌옷 수거함 옷들은 버려진 옷이 아니라 재활용을 전제로 하는 만큼 주인 없는 물건이 아니라는 게 법률적인 판단이다.

조상희 아름다운가게 간사는 “아름다운가게를 비롯해 굿윌스토어, 구세군 행복나누미,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 등 널리 알려진 자선단체나 사회적기업에 문의하면 겨울외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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