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국회로부터 예산안을 승인 받기 위해 내세운 내년도 4대 중점과제엔 ‘금융중심지 정책을 계속 추진해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중점과제에 포함될 정도면 정부가 이 정책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단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사업에 필요한 예산으로 국회 승인을 받은 돈은 12억3,500만원에 불과합니다. 핀테크 지원사업 예산(80억원)의 6분의 1 수준입니다.
국회가 금융중심지 정책을 타박하며 예산을 깎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정부가 그만큼만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내년 예산은 금융위 예산안보다 되레 600만원 늘었습니다. 금융중심지 예산 규모는 최근 수년간 거의 변함 없습니다. 매년 금융당국의 주요 정책 리스트에 포함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사업이 없다 보니 예산이 늘지 않는다는 게 실상에 가깝습니다. 내년 예산 또한 절반 가까이가 부산국제금융센터 운영비 등 보조사업에 쓰입니다. 우리나라를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원대한 포부가 무색한 상황입니다.
금융중심지 정책은 올해로 15년째를 맞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탄생한 뒤 정권이 세 차례 바뀌는 와중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거의 없습니다. 정책의 취지는 우수한 금융사업 여건을 조성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을 속속 유치하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금융중심지 중 한 곳인 부산엔 국내 금융공기업만 대거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내려갔지만 정작 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증권사는 한 곳도 없습니다. 또 다른 거점인 서울의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역시 수년째 텅 빈 사무실이 적지 않습니다. 영국계 리서치기관 ‘지옌그룹’이 최근 발표한 세계 주요 도시의 금융중심지 경쟁력 순위에서 서울은 평가 대상 100개국 중 33위를 기록하며 6개월 전보다 6계단이나 내려앉았습니다. 반면 우리가 아시아 금융허브 경쟁국으로 지목했던 홍콩, 싱가포르, 중국(상하이), 일본(도쿄)는 나란히 3~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지부진하다 못해 잊히고 있던 금융중심지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바로 전북을 서울, 부산에 이은 제3의 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대통령 공약 때문입니다. 최근 부산상공회의소가 제3금융중심지 조성 반대 성명을 내자 곧바로 해당 지역구 의원이 ‘지역 이기주의’라며 되받아쳤습니다. 이를 본 전직 금융당국 고위임원은 “정부가 내세우는 ‘세계 속 금융한국’은 요원한데 정작 우리 내부에선 금융허브 역할도 못할 지역을 정하느라 정치 싸움만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