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스에 노약자를 위한 하차벨은 노약자석 팔걸이에 부착돼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창문 위쪽이나 한국 버스의 노약자석처럼 낮은 위치가 아니라 아예 좌석 팔받침에 붙어 있다. 노약자를 위해 낮은 위치에 하차벨을 붙이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작은 배려다. 사실 이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배려가 삶의 질이라는 큰 차이를 만드는 법이다.
책은 이 같이 일본 사회 곳곳에 깨알 같이 박혀 있는 작은 배려를 들여다 본다. 걸음이 느린 노약자나 짐이 많은 사람이 횡단보도를 편안하게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신호 연장 버튼이나 열차 안에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가방 잠금 시스템, 책의 훼손을 막는 쿠션이 깔려 있는 책 바구니 등 70여가지 사례가 저자의 돋보기에 포착됐다. 저자는 이런 요소들을 ‘디테일’이라고 표현한다. 디테일에 주목하고, 이런 디테일까지 고려한 배경과 의미를 분석했다.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을 저자는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고 파헤쳤다. 단지 디테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들,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설명한다.
여행 안내서일 거라는 선입견을 깨는 이 책은 전통적인 종이 책의 성격을 벗어난다. 처음부터 책으로 기획된 콘텐츠는 아니다. 먼저 유료 디지털 콘텐츠로 선보였던 것인데, 이를 재미있게 읽은 이들이 소장할 수 있도록 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몰랐던 이들에게 책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로 안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간 과정부터 흥미롭다. 지난해 12월 저자가 평소 좋아하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중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쿄에서 배우고 왔습니다’라는 짤막한 글을 올린 것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우연히 글을 본 기획자가 관련 내용을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저자는 이전부터 꾸준히 일상에서 발견한 것들을 개인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온 터. 먼저 기획안을 소개했고, 도쿄의 디테일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제작비 모금활동(펀딩)에 나서 올해 초 디지털 콘텐츠가 탄생했다.
도쿄의 디테일
생각노트 지음
북 바이 퍼블리 발행ㆍ344쪽ㆍ1만5,800원
책은 일종의 애프터서비스에 가깝다. 필요한 부분만 찾기 힘들다는 점, 소장하기 힘들다는 점 등 디지털 콘텐츠가 가진 한계를 책이 보완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 장씩 펼쳐가며 함께 읽는 도쿄의 디테일’ 시리즈를 시작했다. 책의 ‘번외 편’을 마련한 셈이다. 일정 페이지까지 나누어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뒷얘기와 미처 싣지 못했던 내용, 책과 함께 보면 좋을 디지털 자료 등을 통해 독자와 대화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이 능동적인 지식활동에 동참하려면 금기가 하나 있다. 저자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라는 것. 특정 이름이나 직업이 아닌 ‘기록 활동가’이고 싶은 저자의 뜻이란다. 저자는 생각노트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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