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는 건축비의 3%를 ‘하자보수 보증금’으로 보증보험에 예치해야 한다. 입주 후 누수, 결로, 건물 파손 등의 하자가 발견되면 입주민들은 보증기관에 하자보수 보증금 지급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사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보증기관은 하자비용을 선지급할 필요가 없다. 현행 약관상 계약자(건설사)가 피보험자(입주민)의 보험금 청구에 단순 이의만 제기해도 보증기관이 무조건 보험금을 가지급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채무이행보증보험 표준약관상 보험금 가지급 거절사유 조항이 부당하다며 금융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했다고 13일 밝혔다. 채무이행보증보험은 채무자인 보험 계약자가 계약서에 정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채권자에게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일반적인 손해보험과 달리 계약자-피보험자-보험사 3자 체제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가 체결하는 가맹점사업자피해보상보험(가맹금 반환)이나 기업들이 사무실 임대 시 건물주와 맺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채무이행보증보험 표준약관 제5조는 계약자가 피보험자(보험금을 받는 사람)의 보험 청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등 다툼이 있는 경우 ‘회사(보험사)는 보험금을 가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조항이 피보험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상권 행사(보험사가 미리 지급한 보험금을 계약자로부터 받는 것)가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손해보험과 달리, 계약자가 청구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를 모두 가지급금 부지급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져야 할 위험부담을 부당하게 피보험자에게 전가하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시정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공정위에 처리 결과를 알려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송이나 분쟁조정 등 계약자가 명확한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 한해 가지급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년 중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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