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학술회의서 협정 초안 공개
“북 비핵화 50% 달성 때 촉매제로 유용”
‘2020년 초 남ㆍ북ㆍ미ㆍ중 4자 서명으로 1953년 정전(停戰)협정에 따라 일시 정지됐던 한국전쟁을 공식 종료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12일 공개한 ‘한반도 평화협정’ 시안의 요지다.
남ㆍ북ㆍ미ㆍ중 4자가 참여하는 포괄협정 방식을 채택했다는 게 시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남북뿐만 아니라 북미와 미중 등 양자간 합의를 하나의 협정문에 넣어 4자 모두의 지지와 협력을 협정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공동 발제자 중 한 명인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남북 양자간 회담과 달리 포괄협정 방식을 사용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평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가 미중 간 군사 분쟁에 연루될 가능성도 차단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게 연구원 측 설명이다.
시안이 상정한 협정 체결 시기는 2020년 초다. 북한의 비핵화가 절반 정도 진척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비핵화 프로세스 도중에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됐다. 일종의 촉매제인 셈이다. 2020년 초로 시점을 잡은 건 그해 11월에 열리는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부담이 커져 대북 정책 관련 유연성 발휘가 힘들다는 점도 고려됐다.
시안은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평화에 대한 세가지 질문‘을 주제로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총 9조 34항으로 구성됐으며, 김상기 실장 외 5명의 공동 연구자가 발제했다. 연말 완료 예정인 통일연구원 연구 과제 '한반도 평화협정문 구상과 제안'의 일환으로 작성된 초안이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학계에서 이 정도로 구체화한 형태의 평화협정이 제시된 게 처음이라는 이유에서다.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시안은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면서도 형식적으로 갖춰야 할 내용은 다 갖춘 훌륭한 평화협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평화협정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불가침을 약속하는 취지로 나온 것”이라며 비핵화 프로세스 도중 협정이 체결될 경우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 비핵화의 단계적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남훈 위원도 “4자에서 제외된 러시아와 일본까지 고려해 6자 관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구체적 협정 시안 공개가 관련 논의가 단초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김상기 실장은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2차 북미회담 논의도 나오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번 협정 시안을) 출발점으로 전문적 논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행사를 마무리하며 “평화를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며 “평화에 대해 열망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오늘 평화협정 관련 논의가 많았다”고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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