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G20회의 여정의 중간에 체코에 들러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수주하기 위한 외교 노력을 전개했다는 소식이 언론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의 국제적 위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데 국내 원자력산업계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심한 갈등의 한복판에 내몰려 있다.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발표된 이후 이를 ‘탈원전 정책’으로 단정한 원자력 관련 학계와 업계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와 상당수 국민들로부터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특히 다수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의 경제적 이점과 기술적 안정성이 지속적, 집중적으로 크게 부각되어, 지난 어느 시기보다도 일반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관심과 친원자력 여론이 확산되는 역설적인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
근래 주장되고 있는 친원전 논리는 대체로, 원자력발전이 현재까지는 경제성이 상대적으로 큰 에너지원이라는 점,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이 이미 주요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며 우리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양성할 가치가 크다는 점, 당장 국내 원전 건설 계획이 축소되면 그 동안 형성된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에 처한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하여 정부도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의 생태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을 명백히 하고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산업통상자원부를 필두로 정부 부처,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자력 관련 기관과 기업들이 합심하여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원전을 새로 건설할 계획을 추진 중인 국가들을 상대로 활발한 수주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기조 아래에서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유지 내지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원전 수출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그 동안 전개된 원전 수주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현실을 보면 대규모 해외수주, 특히 계약금액이 수백억 달러에 이르고 전략적으로도 극히 민감한 원전 수주는 국가 역량의 집중이 필요한 사안이기에 가시적 성과를 이루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추진 중인 해외수주 사업도 기자재 제작업체의 실질적인 물량 확보로 이어지기까지에는 상당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찬반 의견을 차치하고, 국민 다수에게 긍정적이고 수용 가능한 타개책은 무엇일까.
이미 상당 부분의 투자가 이루어져 있는 신한울 3, 4호기의 재개를 재검토하되, 이를 수십 년째 표류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입지 문제의 해결과 연계하여 추진하면 좋지 않을까 제안한다. 물론 원자력업계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신규 원전을 계속 지어 나갈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지리적, 사회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일종의 금단현상과 같은 충격을 받고 있는 국내 원자력산업계에 다소의 유예기간을 제공하면서 그 동안 꼭 필요하지만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국가적인 명분과 실익이 크지 않겠는가.
신한울 3, 4호기가 건설될 예정이었던 경북 울진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고 폐광지와 깊은 산악 지역에 인접해 있다. 현재도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2기가 건설되고 있어서 국내 어느 지역보다 원전 친화적인 곳인 동시에 핵연료 처리장의 입지로서도 우선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여겨진다. 과거 낙후된 어촌이었던 지역이 원전으로 현재와 같은 발전이 이루어진 과정을 몸소 경험한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울진 지역 주민들과 해당 지자체가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재개를 요청하고 있음을 고려한 안타까움에서 감히 제안해 보고자 한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회장 김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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