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로 다가온 총ㆍ대선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집권 여당이 갑자기 ‘가루다 자카르타 대방조제(가루다 방조제)’ 건설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루다 방조제는 연평균 7.5㎝씩 바다로 가라앉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수몰 위기에서 구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아 온 초대형 사업이다.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사업을 방치하고는 선거에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러싸고 대권 후보들 간의 신경전도 본격화 하는 분위기다.
11일 템포, 메르데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공공사업국민주택부(PUPR)의 수자원 전문요원 피르다우스 알리는 “(가루다 방조제 건설 사업에) 자카르타 주정부뿐만 아니라 인근 바튼주, 서자바주도 참여한다”며 “방조제 사업은 수도권해안종합개발(NCICD)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정부의 관리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 동안 주정부가 관리하던 사업을 조코위 대통령이 주도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격상시킨다는 뜻이다.
가루다 방조제 건설 사업은 조코위 대통령이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이다. 1994년 처음 제기됐지만, 환경과 예산 문제로 지지부진하다 2014년 10월 첫 삽을 떴다. 조코위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자카르타 주지사 자리를 당시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 부지사가 대행할 때다.
주정부 사업을 중앙정부 사업으로 격상시킨다는 인도네시아 정부 발표는 조코위 대통령과 대선 경쟁을 벌이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프라보워 총재는 가루다 방조제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지지부진한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공약을 내걸려 하자 대응책 차원에서 나온 반응이라는 것이다. 프라보워 총재는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경제포럼에서 유엔 보고서를 인용, “2025년이면 바닷물이 호텔 인도네시아 인근 로터리까지 닿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지름 100m의 이 로터리는 자카르타 북쪽 해안으로부터 남쪽 시내 방향으로 8㎞ 지점에 있다. 자카르타 시내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지반 침하가 겹치면서 현재 자카르타는 사면초가나 다름 없는 상황. 하지만 ‘조코위-아혹’ 꼬리표가 붙은 사업인 탓에 야권이 예산 편성에 견제구를 던지면서 그 동안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프라보워 총재의 정치적 동지인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는 지난 9월 26일 방조제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인공섬 건설과 관련, 시공업체들이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싸고 다수의 규정을 위반했다며 17개의 인공섬 중 13개 섬에 대한 공사를 중단시킨 바 있다. 이 조치는 인도네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차기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과 프라보워 총재에 대해 각각 기호 1, 2번을 부여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와 조코위표 사업에 대한 야당 주지사의 견제라는 해석이 나왔다.
아니스 주지사는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인 아혹을 제치고 지난해 10월에 자카르타 주지사에 부임했다. 주지사 선거 당시 프라보워 총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았다. 프라보워 총재는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자카르타 한 주재원은 “아니스 지사가 수도 수몰을 막을 사업에 제동을 걸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공사를 중단한 채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본 프라보워 총재가 정적의 사업을 띄워 가면서까지 아니스 주지사에게 인공섬 조성 사업 중단조치를 번복할 기회를 줬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서쪽의 자카르타는 인구 1,000만명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개발하면서 지하 대수층이 사라지는 바람에 지반 침하로 도시 면적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아진 상태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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