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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열풍에 밀렸던 혁신신약…”세상에 없던 화학물질로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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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열풍에 밀렸던 혁신신약…”세상에 없던 화학물질로 경쟁력”

입력
2018.12.11 18:10
수정
2018.12.11 22:5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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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혁신신약 건수. 김경진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혁신신약 건수. 김경진 기자

지난 8월 JW중외제약은 글로벌제약사 레오파마에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후보물질을 4억200만달러(약 4,500억원) 규모로 수출했다. 앞서 6월 생명공학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을 캐나다의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에 1억2,500만달러(1,300억원) 규모로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둘 다 아직 임상시험 전이다. 해외 기업이 개발 초기인 신약 기술을 사가는 경우는 드물다. 2016년 동아에스티의 항암제 신약 기술은 이보다 더 초기인 후보물질 탐색 단계에서 5억2,500만달러(6,400억원)에 글로벌제약사 애브비로 수출됐다.

이들은 모두 요즘 국내에서 각광받는 바이오의약품이 아니다.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화학신약이다. 하지만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세상에 없던 물질을 설계해 만드는 혁신적인 화학신약의 가치는 바이오의약품이나 복제약이 쉽게 넘볼 수 없다.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증상은 가려움이다.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환자의 면역세포 막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하면 가려움을 일으키는 신호가 만들어진다. JW중외제약의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후보물질(JW1601)은 수용체에 달라붙어 히스타민이 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가려움 신호를 차단한다. 기존 아토피피부염 약과 전혀 다른 작용 방식이다. 기존 약들은 면역체계를 억제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고 가려움증 해결이 어려우며, 바르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반면 JW1601은 어린이도 복용할 수 있는 알약으로 개발이 가능하다.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효능을 나타내는 약을 ‘혁신(First-in-class)신약’이라고 부른다. 특히 구조를 설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화학합성 혁신신약은 제약기업을 세계적인 규모로 키우는데 큰 몫을 해왔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잔탁’, 미국 길리어드는 ‘타미플루’와 ‘소발디’ 같은 혁신신약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혁신신약 개발이 주춤해지며 생체 내에 존재하는 물질을 본떠 만든 바이오의약품으로 업계의 관심이 옮겨갔다.

JW중외제약 제공.
JW중외제약 제공.

문제는 가격이다. 생체 물질은 대부분 덩치가 크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산과 관리 방법이 까다롭고 대규모 설비가 필요하다. 기업의 설비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바이오의약품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환자가 1년에 지급해야 하는 약값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호필수 JW중외제약 상무는 “바이오의약품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가 입장에선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지고, 환자들은 치료 혜택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해 값을 내린 바이오시밀러가 급부상했지만, 이 역시 ‘장치산업’인 데다 오리지널이 약값을 인하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브비는 자사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가 여러 종 출시되자 최근 값을 최대 80% 할인했다. 업계에선 머잖아 중국에서 바이오시밀러가 나오기 시작하면 화학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처럼 바이오시밀러 역시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수 국내 기업들이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혁신신약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은 백혈병의 두 가지 원인을 한꺼번에 억제한다. 두 원인 물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하고 공통되는 부분에 들어맞도록 설계한 이 신물질은 동물실험 단계에서 수출이 성사됐다.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생체 물질을 방해하는 동아에스티의 항암제 기술은 명확한 후보물질도 나오지 않았는데 애브비가 투자를 결정했다. 개발까지 난관이 많지만, 일단 성공하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이 최근 5년(2013~2017년) 동안 허가한 혁신신약은 65개에 이른다. 이중 국산은 없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는 “남의 약 복제하는 바이오 기술만으로는 미래가 없다. 잠재력 있는 혁신신약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며 바이오 기술에 편중된 국내 투자 분위기의 변화를 촉구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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