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정부 대응에 비판적이었던 인권위 직원 명단인 이른바 이명박 정부 ‘인권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는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 수사를 검찰에 의뢰할 방침이다.
11일 인권위가 발표한 자체 진상조사(올 7~11월 실시) 결과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는 인권위가 촛불집회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적하며 관련자 징계를 권고한 2008년 10월 27일 이후 본격화했다. 경찰청 정보국은 인권위 직원 성향을 분류한 현안 보고자료를 작성했으며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은 2009년 10월 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전날 임명된 김옥신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을 만나 ‘이명박 정부와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촛불집회 직권조사를 담당한 김모 사무관을 포함, 직원 10여명의 인사기록카드를 전달했다.
진상조사를 이끈 조영선 사무총장은 “청와대가 전달한 블랙리스트는 촛불집회와 관련된 인권위 업무에 불만을 가진 정부가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의 인권위 별정ㆍ계약직 직원을 축출하고 정원의 21.2%(44명)를 감축했음에도 축출하지 못한 직원을 사후 관리하고자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청와대 블랙리스트가 김 사무총장에게 전달된 시점을 전후로 4명의 직원이 면직 또는 퇴직했는데 인권위는 이 중 최소 2명은 블랙리스트 영향으로 조직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인권위는 청와대 관계자가 인권위 고위 간부를 만나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의혹을 2012년 (언론 보도로) 인지하고도 침묵함으로써 스스로 인권위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기하는 과오를 범했다”며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전 대통령 등 관련자를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날 인권위 점거 농성 이후 숨진 장애인활동가 우동민씨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우씨는 2010년 11월 22일부터 10여일간 인권위 청사에서 장애인단체와 함께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퇴진을 촉구하는 점거 농성을 했는데,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가 농성 장소의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고 활동보조인의 출입과 식사 반입을 제한해 우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해왔다.
인권위 점거 농성 중이던 우씨는 12월 6일 고열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이틀 후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앞 도로 점거 투쟁에 참여, 건강이 악화해 이듬해 1월 2일 폐렴으로 숨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우씨 사망이 인권위 농성 참여에 따른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지만 당시 인권위 조치가 우씨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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